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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행과 주저사이, 최초의 결정 그 이후

입력
2023.04.13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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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부터 취업해서 일하기까지 쉴 틈 없이 달려온 친구에게 퇴사는 마치 '최초의 결정'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친구는 퇴사 전까지의 인생에서 한 번도 오롯이 자기 스스로 결정해서 끝내거나 시작한 일이 없었다고. 그런데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고 멈춰보다니. 그런 자신이 낯설면서도 자유롭다 느꼈고 그 이후로는 크고 작은 결정들이 전보다는 수월해졌다고 했다.

내게 최초의 결정이라 여길 만한 건 뭐가 있을까. 먼저, 외박을 처음 감행했던 날이 떠오른다. 부모님은 내가 대학생이 되었어도 자정까지는 집에 들어오길 바랐다. 외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독립한 친구들이 누구의 허락도 없이 자유롭게 생활하는 게 마냥 부럽기만 했다. 그러다 첫 대학교 축제의 밤, 벌써 가면 어쩌냐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나는 밤 11시에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찬 캠퍼스를 십여 분 가로질러 걸으며 '지금 가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곧 역에 도착해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반대쪽으로 넘어감과 동시에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가야만 하는 이유는 부모님 외에 없고, 나는 가고 싶지 않다!' 그러니 부모님께 걱정 끼칠 일은 없을 것이며 실시간 사진과 비상 연락처를 전달하겠다고 말씀드리면 되지 않을까. 떨리는 심정으로 전화로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결국 외박 허락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비장할 일이었나 우습지만 그때는 무척 어려운 시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처럼 나도 그 이후 조금의 자유를 얻었지만 여전히 또 다른 틀에는 갇혀 있었다. 언젠가 책 한 권을 내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도, 글을 잘 쓰거나 유명해야만 책을 내는 것 아닌가 하며 스스로 포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독립출판을 알고 나니 그 또한 벗어나면 그만인 틀이었다. 독립출판물이란 책의 기획부터 원고 작성, 디자인, 유통 등 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한 제작자가 모두 담당하며 출판하는 책을 말한다. 그러니까 누구나 만들어도 되는 책. 그렇게 나는 첫 책을 만들면서 독립출판이라는 세계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저 '하면' 될 일이었다.

지난 주말, 제주 북페어가 열렸다. 독립출판물을 주로 다루는 전국 각지의 셀러 200여 팀이 모여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자리였다. 오랜 시간 꾸준히 작업을 이어온 사람도,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사람도 있었다. 각자 다양한 모습을 하고서도 느껴지는 일종의 동질감에 왠지 뭉클했다. 집요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기 자신을 허용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도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기꺼이 허용하는 법이다. 그런 순수와 다정함이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져 왔을, 외부에서 비롯한 당위들을 돌아본다. 공부를 잘해야 하고, 변변한 직업을 가져야 하고, 돈이 많아야 하는 등. 얼마간 편리한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는 것들. 그러나 현실은 더 구체적이기에 한 번쯤 '정말 그래야만 할까?' 질문해 보기를 권한다. 혹시 스스로 갇혀 있는 것이라면 스스로 나올 수도 있을 테니까.

영국의 영화배우 톰 히들스턴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두 번의 인생이 있어요. 두 번째 인생은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걸 깨달을 때 시작됩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꿔 말해보고 싶다. "두 번째 인생은 '그래야만 한다'에서 벗어날 때 시작됩니다." 두 번째 인생에서 당신은, 무엇이든 해도 된다.


김예진 북다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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