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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문화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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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 ‘아니메’의 인기가 일본에 대한 호감은 아니다.
한국 극장가에서 일본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인기라고 한다. 1990년대 추억의 농구 만화 '슬램덩크'를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역대 관객 수 1위를 갱신했단다. 원작자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덕분인지 원작의 분위기와 캐릭터의 감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호평을 자주 들었다. 나도 한때 원작 만화 대사를 줄줄 외우는 광팬이었던 만큼, 극장에서 상영하는 동안 꼭 보러 갈 생각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뒤를 이어,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신성으로 주목받는 신카이 마코토(新海 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봉 한 달 만에 관객 수가 4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들린다. 실제 풍경을 그대로 옮긴 듯한 깔끔한 그림체와 현실과 공상을 오가는 스토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신카이 감독의 스타일이 한국의 팬들에게도 제대로 통한 모양이다. 오래전부터 그의 작품에 주목했던 팬으로서 반가운 소식이었다.
한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사랑받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1970년대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手塚 治虫) 감독의 '아톰', '사파이어 왕자' 등의 TV 시리즈가 안방극장에서 한국 어린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1980년대에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 駿) 감독이 제작한 '미래 소년 코난', '빨강 머리 앤' 등의 TV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고, 이후 그가 이끄는 지브리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걸작 애니메이션들도 하나같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굳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코로나19 사태로 영화계가 꽁꽁 얼어붙었던 2021년에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이 국내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둔 전례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은 건재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최근 일본에서도 한국의 극장가에서 일본발 애니메이션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 꽤 화제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일본 제품을 불매하자는 ‘노 재팬’ 운동이 자발적으로 벌어졌다는 사실은 일본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근래 두드러지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한국인의 ‘신경질적인’ 반일 감정이 옅어지는 증거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도 제법 감지된다. 일본의 관점에서는 빠르게 ‘호전’되고 있는 한일 관계와 연동해서 일본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인 평가가 개선되는 중이라고 이해하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오래도록 경색되었던 한일 관계에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대일 외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두드러진다. 우리 정부의 일방적인 양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 정부의 바뀌지 않는 오만함이 오히려 반감을 사는 듯하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호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 한일 양국에 팽배한 문화 내셔널리즘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대중문화 콘텐츠는 1980년대부터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이들 분야의 일본 콘텐츠는 여전히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수준급이다. 다양한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삼아 기상천외한 콘텐츠가 풍부하게 쏟아져 나오고 폭넓게 소비된다. 요즘에는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서 시작된 ‘웹툰’이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만화 콘텐츠의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일본에서 제작하는 단행본 스타일의 ‘망가(manga, 만화를 뜻하는 일본어)’가 전 세계 만화의 대명사였다. 영미권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이 많아지면서 ‘아니메(anime)’ 혹은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이라는 말도 생겼다.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의 독특한 미적 감각과 스타일이 수준 높은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1990년대에는 ‘제이팝’이라고 불리던 일본의 대중음악도 아시아권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생기기 한참 전이었지만 제이팝의 국제적 인지도가 꽤 높았다. 카세트테이프나 음악 잡지 등 지금 생각하면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매체 환경 속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국제 팬덤을 쌓아 올렸다.
이렇게 제이팝, 망가, 아니메 등의 세계적인 인지도가 차곡차곡 높아지면서 이들의 인기를 계기로 국가적 자긍심을 강화하려는 분위기가 생겼다. 문화적 다양성보다 집단의 문화적 고유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문화 내셔널리즘이다. 아예 일본 정부가 나서서 자국의 대중문화 콘텐츠의 인기를 국가 브랜딩에 활용하는 ‘쿨 재팬’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도 있다. 일본 내에 콘텐츠의 인기를 문화적 우월감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 우세하다 보니, 최근에는 케이팝이 제이팝보다, 한국 드라마가 일본 드라마보다 인기를 끄는 현상을 두고 국가 대항에서의 ‘패배’라고 받아들이는 기묘한 경쟁 의식도 자꾸 튀어나온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케이팝이나 한국 드라마, 영화 등이 세계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상황을 지렛대 삼아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사고방식이 있는 것이다. 대중가요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시절에, 외국인에게 거두절미하고 “두 유 노 강남스타일?”(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 알아?)이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한국인의 민망한 사교술이 회자되기도 했다. 한일 관계가 삐걱대는 와중에 ‘노 재팬’을 실천하기는커녕 일본 여행을 떠나고,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즐기는 젊은이가 불편하다는 기성세대도 왕왕 본다. 문화적 취향과 선호에 따른 개인적인 선택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는 편협함 역시 문화 내셔널리즘의 연장선에 있다.
한국과 일본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각각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린 글로벌 첨병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국가주의적인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루트에서 탄생하고 성장한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예를 들어, 전 세계 평단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좌파적 성향 때문에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사회 비판적인 영화 '어느 가족'이 해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조명했다는 이유로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자유로운 표현 문화와 다양성 속에서 대담한 창의성이 발휘된다. 보편적인 문화적 가치보다 문화적 배타성을 부각시키는 문화 내셔널리즘은 다양성을 위협하고 타문화와의 교류를 방해하는 부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 한일 간 문화적 호감과 교류에 희망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젊은이들을 관찰해 왔다. 한일 간의 대화와 상호 이해를 가로막는 끈질긴 문화 내셔널리즘 속에서도, 대중문화 분야를 매개로 삼아 한일 젊은이들의 교류와 호감은 지속적으로 높아져 왔다는 것을 체감한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대중음악, 드라마, 음식 등을 사랑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한국에는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게임, 일본 여행을 즐기는 젊은이가 여전히 많다. 어떻게 보자면 한일 젊은이들의 식지 않는 문화적 호감이야말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실마리라는 생각이 든다. 좀처럼 합이 맞지 않는 한일 정부의 정치적, 외교적 대화보다도, 호감을 통해 정서적 거리를 좁혀 가는 한일 젊은이들의 문화적 교류에 더 희망을 걸어 보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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