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산불, 강풍 타고 마을 덮쳐 주택 100채 잿더미... 1명 사망 16명 부상

입력
2023.04.11 19:00
수정
2023.04.11 21:1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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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간지풍에 쓰러진 수목이 전깃줄 덮쳐
강릉속초고성 학교 휴업... 500여명 대피
강풍에 헬기 무용지물 '초기 진화 실패'
지역문화재 소실... 경포대 현판은 대피
헬기 뜬 뒤 내린 비에 1시간 만에 '완진'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불이 나 주택이 불에 타고 있다. 강릉= 연합뉴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불이 나 주택이 불에 타고 있다. 강릉= 연합뉴스

강원 강릉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로 1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다쳤다. 봄철 강풍 속에 산불이 급속도로 번지면서 건물 100여 채가 불타고 주민 수백 명이 대피했다. 경포대 현판 등 문화재도 피난길에 올랐고 학교는 휴업에 들어갔다. 소방·산림당국이 최고 수준의 대응단계를 발령하고 총력 진화에 나섰지만,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동쪽으로 번지다가 오후 3시 반쯤 내리기 시작한 비에 한 시간 만에 완전 진화됐다.

11일 산림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22분 강릉시 난곡동 산24-4 야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발생했다. 강릉시 관계자는 “오전 8시 57분 재난문자 메시지를 통해 경포동 10통, 11통, 13통 등 7개 지역에 긴급 대피령을 발령했다”며 “불이 무섭게 번져 산불 확산 방향의 산대월리, 순포리에도 대피령을 발령해 주민 557명을 피신시켰다”고 말했다. 아이스아레나에 528명, 사천중학교에 29명이 대피했다. 경포대초등학교 학생들은 버스로 산불영향구역 밖의 초당초로 긴급 대피했고, 강릉과 속초, 고성 3개 지역 학교들이 단축 수업 또는 휴업에 들어갔다.

이날 산불로 전소한 펜션에서 주인 전모(88)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소방청 관계자는 "이웃 신고로 강릉시 하남길 263번길 인근 전소 펜션에서 발견됐다"며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산불 대피 과정에서 화상 1명, 손가락 골절 1명, 연기 흡입 1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소방 및 산림 진화 대원 2명도 안구에 불티가 튀거나 2도 화상을 입었다.

산불은 이날 오전 평균 초속 15m, 순간 최대 초속 30m의 남서풍을 타고 파죽지세로 동해로 향했다. 소방청은 오전 9시 11분 소방대응 2단계를 발령한 데 이어, 9시 42분 전국 소방동원령 2호를, 9시 43분에 소방 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3단계 발령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강릉 산불을 보고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장비와 인력을 신속히 투입해 조기 진화에 총력을 기울여달라"고 지시했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저동 인근 펜션 밀집 지역에서 불길이 번지고 있다. 강릉=하상윤 기자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저동 인근 펜션 밀집 지역에서 불길이 번지고 있다. 강릉=하상윤 기자

산림청도 오전 10시 30분 산불 3단계를 발령했다. 전국에서 200여 대의 소방차와 장비가 강릉으로 집결했고, 산불 진화헬기 4대와 진화차 57대 등 장비 403대가 투입됐다. 산림과 소방, 의용소방대, 공무원, 군 등 총 투입 인력은 2,787명이다. 민가 화재 방어와 진화는 소방청이, 산불 진화는 산림청이 맡았다. 오후 4시 30분 기준 진화율은 100%, 소실된 산림 면적은 170ha, 산불영향구역은 379ha다. 소실 면적은 축구장 240개 규모다.

이번 산불로 펜션과 주택, 호텔, 상가 등 건물 100여 채가 전소되거나 반소됐다. 산림청 관계자는 “강풍에도 뜨는 초대형 헬기 2대가 이륙했지만, 순간 풍속이 초속 60m에 달해 공중 진화를 포기했다”며 “산불 진화대원들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으로 지상 진화에도 애로가 컸다”고 말했다.

초기 진화에 실패해 산불이 3㎞가량 떨어진 경포대까지 확산하면서 문화재 피해도 속출했다. 시도 유형문화재인 강릉 방해정(放海亭) 일부가 소실됐다. 경포호 인근의 조선 후기 정자 상영정(觴詠亭)과 수도 도량으로 알려진 인월사가 전소됐다. 문화재청은 산불이 확산하자 경포대 현판 7개를 떼내어 인근 오죽헌박물관으로 옮겼다.

산림·소방당국은 산불 영향구역을 4개 구역을 나눠 장비 192대, 인력 463명을 배치해 재발화에 대비하고 있다.

정확한 산불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양간지풍(襄杆之風)으로 넘어진 수목이 전깃줄을 덮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양간지풍은 양양과 고성 간성 사이에 국지적으로 부는 강한 바람이다. 동해안 봄철 대형 산불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정확한 산불 원인을 밝히고 피해 내용을 집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 박은성 기자
강릉= 김재현 기자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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