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도 가리지 않는 미국의 첩보 활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한국 상대 도감청 의혹은 대통령실까지 타깃이 된 정황이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10년 전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주미 한국대사관이 첩보 표적이란 사실이 드러났을 때의 충격과는 차원이 다르다. 미 정부 기밀문건 유출로 우연히 국가안보실 감청 정황이 드러났을 뿐, 다른 대통령실 조직이나 바로 옆에 청사를 둔 국방부·합동참모본부에 미국 첩보망이 침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실은 즉각 내부 보안 점검에 나서야 한다. 이번 도감청 정황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직접적 결과로 보긴 어렵다 해도, 차제에 대통령실 등에 대한 도감청 방지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커졌다는 얘기다. 야권에선 "청사 창문에 도감청 방지 필름이 부착됐을 뿐 벽에는 방지 설비가 안 됐다"(김병주 민주당 의원) 등 구체적 지적까지 나온다. 정쟁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보안 강화 계기로 삼는 게 우선이다.
공교롭게 이달 하순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를 앞두고 문제가 발생한 터라 정상회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신속한 매듭이 필요하다. 다만 미국에 당당하게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스노든 폭로 당시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했을 정도다. 러시아가 유출된 문건을 조작해 역정보를 퍼뜨리는 정황도 있는 만큼 미국으로부터 명명백백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
대통령실은 미국 측의 사실관계 파악을 일단 기다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 측이 예민한 첩보사항을 스스로 투명하게 알려주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보도에 근거해 미국 측에 보다 적극적인 설명을 요청하고, 필요하다면 도감청의 시점, 장소, 상황 등 구체적 경위 설명까지 요구해야 한다. 미국도 우리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성의 있는 조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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