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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절차 직접 통보해줬다면"… '권경애 사태'가 쏘아올린 제도 개선 목소리

입력
2023.04.10 04:30
수정
2023.04.12 09:2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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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료 증액·변호사 과실 입증 완화 주장도
"변론 전 모든 증거 공개 '디스커버리' 도입 필요"

법원 로고(왼쪽)와 자물쇠에 묶인 돈다발. 한국일보 자료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법원 로고(왼쪽)와 자물쇠에 묶인 돈다발. 한국일보 자료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재판에 3회 연속 불출석하고 항소기한조차 의뢰인에게 알려주지 않아 학교폭력 피해 유족의 소송을 종결시켜버린 권경애 변호사 사태를 계기로 법원과 국회도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원이 당사자에게 절차 관련 내용을 알려주고, 위자료도 증액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 소송 당사자가 변론 시작 전에 모든 증거를 공개하는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원이 절차 관련 내용 직접 통보해줬으면"

학교폭력을 당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고(故) 박주원양의 어머니 이기철씨가 가해 학생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항소심 도중 종결된 이유는 이씨가 재판 진행 상황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이씨가 재판 과정을 파악하고 있었다면 권 변호사에게 출석을 요구하는 등 허망하게 패소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법원이 대리인뿐 아니라 소송 당사자에게도 절차 관련 내용을 통보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리인을 의뢰인으로 간주하는 민사소송법 대원칙에 어긋날 소지는 있지만, 법원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 변호사의 불성실로 인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인 A씨는 "사건번호와 소송 당사자 이름만 알면 재판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해자가 기소된 지 한참 뒤에 알게 됐다"며 "법원이 1번이라도 절차 관련 정보를 직접 알려주면 법률 지식 부족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위자료 증액·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주장도

권경애 변호사. 연합뉴스

권경애 변호사. 연합뉴스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금인 위자료가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받는 위자료는 최대 3,000만 원에 머무르고 있다. 변호사 잘못으로 인해 의뢰인이 피해를 당하는 경우에도 위자료가 1,000만 원 이상 책정된 사례가 드물다. 한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한국에선 외국에 비해 정신적 손해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며 "전반적인 위자료 액수가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를 준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 의뢰인 측 입증 책임이 완화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홍화 전 대법원 판례심사위원회 조사위원은 2016년 발표한 '변호사의 과오소송과 승소가능성' 논문에서 "소송 관련 사무를 위임받아 처리한 변호사 쪽에 대부분의 자료가 있어서 의뢰인이 변호사의 과실과 소송 패소 간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쉽지 않다"며 "'의뢰인 측이 변호사 과실과 소송 피해의 개연성 정도만 증명하면 변호사가 이를 반박해야 한다'는 미국과 독일 법리를 적용하는 게 공평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신속한 권리 구제를 위해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소송 전 양측이 증거를 공개하고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절차를 뜻한다. 양측은 법원의 문서제출명령 등에 무조건 응해야 한다. 이를 거부하면 상대방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고 패소할 가능성이 커진다. 권 변호사 사건에서도 디스커버리 제도가 있었다면 패소했더라도 유족 측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소송 절차가 끝났을 거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상수 변호사는 "디스커버리 제도는 가해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받는 법 체계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행 민사소송에선 피해자 측에서 증거를 찾아내야 하고, 이마저도 가해자 쪽에서 증거를 숨기면 제출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 박 변호사는 "디스커버리 제도로 의뢰인이 변호사의 불성실함을 증명하기도 더욱 쉬워질 것"이라며 "법이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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