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 위기감이 없다

입력
2023.04.06 20:00
수정
2023.04.06 21:1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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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카드’ 유효 기간 얼마 안 남아
경고음 울려 대도 허위의 찬가 매달려
퇴행 끝내고 중도층 품는 행보 보여야

박대출(가운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양곡관리법 재의요구 후속대책 관련 민·당·정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박대출(가운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양곡관리법 재의요구 후속대책 관련 민·당·정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여당에 위기감이 없다. 3·8전당대회로 당대표, 최고위원 진용이 구성된 게 한 달 전이다. 이후 쇄신과 변화는 없이 실언과 실책으로 연일 시끄럽다. 멈추지 않는 지지율 하락은 이 모든 걸 말해준다. 갤럽조사에서 앞서던 지지율은 야당에 추월을 허용하더니 이제 한참을 뒤처졌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친윤 일색 지도부의 태생적 한계와 당정 일체 행보가 문제라는 건 누구나 동의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일 순 없고, 지금 국민의힘에는 절실함이 없는 게 더 문제다. 절박하지 않으니 입으로 민심 민생을 말하면서 윤심과 지지층만을 바라본다. 생각 따로 행동 따로 부조화라서 하는 일마다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양곡관리법 대안으로 언급된 ‘밥 한 공기 다 먹기’가 황당한 것도 집권여당인지 시민단체인지 헷갈리게 하는 데 있다.

이처럼 간절함 없이 한가한 여당의 배경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여당은 이 대표의 ‘방탄’을 연일 입에 올렸고, 그의 사법 리스크는 여당 반사이익으로 돌아왔다. 여당 스스로 득점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게임을 해온 것이다. 아직도 이런 구도는 유효해 위기의 여당을 구할 이는 검찰과 ‘이재명’일지 모른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 약효’가 비교적 뜸해지면서 발생한 여권의 금단 현상은 많은 걸 시사한다. 근로시간 혼선, 전기·가스비 인상 연기, 물컵 반이 빈 한일관계, 대통령 안보실 혼란 등등. 저수지 물이 빠지듯 이재명 카드에 가려져 있던 여당의 문제들이 갈수록 확연해지고 있다. 종국에는 윤 정부의 법치에 안주하며 고정층만 붙잡고 있던 여당이 되려 이 대표 리스크의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

곧 닥쳐올 현실을 앞두고 위기감이 없는 것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야당 역할이 좁혀진 데다 용산의 실력 부재를 믿는 게 그 배경이다. 1년 전 대선처럼 적대적 공존을 여전히 탈피하지 못한 정치는 참으로 민망하고 기묘하다. 바이든과 트럼프가 상대 행위에 따라 반사이익을 주고받는 점에선 한미 정치 동조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살기 위해 적대시하는 상대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정치라 할 수는 없다. 싸움판의 관객들도 이제는 떠나고 있다. 실종된 정치, 공감 못 할 퇴행 정치에 실망해 중도층, 무당층으로 이탈하는 것이다. 여야 각기 앞세우는 자유, 민주의 가치에 기반하지 않은 정치에 대한 손절이고 혐오인 셈이다. 떠나는 게 아니라 이들이 공감할 영역에 정치인들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하다. 그래서 지금 선거를 치르면 1당은 여도 야도 아닌 무당이 될 것이란 얘기가 허무맹랑하지 않다.

2030세대가 다수인 중도층 피로도는 여당에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들을 포용해내지 못하면 텃밭을 지킨다 해도 내년 총선은 수도권에서 이길 수 없고 선거에 승리하기 어렵다. 5일 재보궐 선거에서 작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긴 곳에서 패한 것은 불안한 징조다. 그리고 태영호 김재원 조수진 최고위원의 잇단 설화, 강원·충북지사의 구설은 희망산을 태우는 격이다. 여기저기 경고음이 울리는데도 여권은 허위의 찬가에 매달리고 있다. 정의감에 중독된 듯 매사 재단하고 심판하려 드니 거리감이 커지는게 당연하다.

진짜 위기는 이런 정치 무능에 가려진 것들, 세계 차원의 변화에 연동된 경제와 안보의 문제들일 것이다. 가짜 위기가 진짜 위기를 덮고 있는지도 모른다. 초거대 위협 등 불길한 예언이 쏟아지는 지금은 과거 같은 행운을 기대할 수도 없다. 이질적인 세력이라도 품어 중도로 확장하고 위기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밥공기 정도 쓸모라도 보인다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태규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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