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4월 7일, 광주비엔날레가 개막했다. 이번 행사에는 나의 이전 전시에서 함께한 4명 작가 이름이 눈에 띈다. 그들은 리버풀비엔날레를 비롯한 '비엔날레전시'를 함께 했었다. "그래서 비엔날레가 도대체 무엇이니?"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원래는 '둘'을 뜻하는 'bi'와 '해'를 뜻한 'annual'을 합쳐 2년마다 열리는 전시를 뜻했다. 이제는 대형 전시를 뜻한다. 3년 주기 '트레날레'도, 10년 주기 '도큐멘타'도 '비엔날레 전시'에 속한다. 이젠 전 세계 300개가 넘는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과연 비엔날레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 여러 비엔날레 중 예술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베니스 비엔날레다. 그 행사는 내게도 여전히 꿈의 무대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에 맞춰 기획한 전시 '베니스, 이상과 현실 사이'도 그런 마음에서 출발했다. 수많은 전시가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열리기에 어쩔 수 없이 관객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전시도 많다. 그래서 당시에도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이 있었다. 꿈의 무대이기에 밀어붙였다.
전시에 눈길을 끌어줄 빅네임을 고민하다, 현대 미술계 최고 영예에 속하는 작가상인 터너상 수상자 마크 왈링저에게 허락을 구하는 메일을 보냈다. "당신이 곰으로 분장하고 텅빈 미술관에서 열흘 밤을 보낸 작품을 좋아합니다. 미술관에 자신을 가두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예술가들의 단상 같았어요. 그 작품명 슬리퍼(때를 기다리는 스파이)를 '베니스의 죽음' 소설과 연결해 전시를 기획해도 될까요?" 기적적으로 왈링저의 수락을 받았다. 진행에 박차를 가했지만 산 넘어 산. 홍보를 위한 현수막을 거는 것도 8,000유로가 들었다. 카드 값이 산처럼 커졌다. '노가다'를 해 항공편을 마련한 작가도 있었다. 베니스에서도 전시팀 20명은 노숙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합숙했다.
이렇게 열심히 했지만, 결과는 걱정이 됐다. 관객이 외면하면 어떡하지?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주에 맞춰 우리 전시도 개막했고, 개막식 당일에만 1,000명이 넘게 우리 전시에 다녀갔다. AN 매거진이 뽑은 꼭 봐야 할 10개 병행전시 중 하나로 뽑혔다.
우리 같은 슬리퍼스가 전처에 많아서 그런 것일까? 같은 해 가장 큰 이슈가 된 전시는 크리스토프 뷔헬의 가톨릭 성당을 이슬람 사원처럼 둔갑한 작품이었다. 산마르코 대성당의 뾰족한 첨탑과 반원형 아치가 증명하듯 베니스는 이슬람계와 깊이 교류했지만 베니스에는 이슬람교 신당이 없었다. 없던 신당이 나타나자 이슬람교 신도들은 예배당을 찾았고, 관람객들은 신도들을 찍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공포가 유럽을 덮었던 당시에 기발한 전시였다. 하지만 폭력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시는 강제 폐막했다. 2019년, 뷔헬은 더 대범해졌다. 난민 800여 명을 태우고 리비아를 떠나서 지중해에 침몰한 배를 인양해, 베니스로 가져왔다. 심각한 난민 문제를 다룬다지만 맥락을 모르는 관광객들은 그 앞에서 셀피를 찍었다. 비난이 거세졌고 '우리의 배'를 통해 또 주목받은 작가. 소속 갤러리는 '해당 작품과 갤러리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비엔날레에서 상업 활동은 금단어지만, 만약 밖에서 갤러리 운영자가 "비엔날레에서 본 작가 기억나시죠? 그의 신작이 나왔어요"라고 할 때는 비엔날레는 어떤 인증 역할을 한다. 비엔날레는 작가를 지원하며, 지역 예술이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이 지대한 것은 분명하다. 비엔날레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배움이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도 'Sleepers in Venice' 전시를 함께한 장지아 작가의 신작이 출품된다. '사랑의 시'를 소의 피로 아름답게 표현해 베니스에서 호평을 받았다. 관객은, 갤러리스트는, 우리는, 그의 작품과 광주비엔날레를 어떻게 관망할지 지켜볼 일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