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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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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가장 많이 들리고 보인 건 '벚꽃'.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도 온통 벚꽃이었다. 평소 꽃을 좋아하거나 봄을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도 벚꽃엔 예민하다. 사람들은 전국 곳곳에서 벚꽃 개화 시기와 장소를 공유한다. 서울숲, 윤중로, 중랑천, 안양천, 양재천, 여의천, 연희동 안산, 석촌호수. 꽃이 진 후에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모두 꽃길로 쏟아져 나왔다. 어디든 벚꽃이었고 어디나 꽃 같은 사람들이었다.
벚꽃은 피워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 일주일. 일주일 동안 온통 아름답다가 금세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벚꽃. 마치 삶의 아름다움 같달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아쉽도록 짧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벚꽃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나도 꽃이 질세라 아이의 손을 잡고 벚꽃길 산책에 나섰다. 아이는 연신 "바람아 바람아" 하고 바람을 부른다. 벚꽃이 바람에 흔들리면 눈꽃으로 변하는 마법을 경험한 적 있는 아이다. 꽃잎이 떨어지면 웃고 뛰고 하늘을 향해 손짓한다. 산책을 다녀온 다음 날에도 벚꽃이 많은 곳에 또 가, 바람과 벚꽃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장면이 아마 오래 기억에 남아 다음 봄에도 벚꽃을 기다릴 테다.
올해 벚꽃은 지난해보다 평균 10일 넘게 빨리 개화했다. 가지에 세 송이 이상의 꽃이 피면 개화, 한 나무의 꽃이 80% 이상 피면 만개라 하는데, 개화뿐 아니라 일찍 만개했다. 서울은 보통 평균 4월 10일경 개화한다. 하지만 올핸 3월 말 모두 피어났다. 그렇다. 이상기온으로 인해 벚꽃의 개화 시기가 빨라진 것이다. 역대 두 번째 빠른 개화라고 한다. 이대로라면 '역대'는 매년 갱신될 것이다. 빠른 개화로 사람들은 일주일 일찍 봄을 맞이했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빠른 개화는 벚꽃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 한 배우가 활짝 핀 개나리 앞에서 찍은 사진이 화제였다. 사진을 찍은 날은 1월 14일. 서울 기준 평년 3월 28일에 개화하는 개나리가 두 달이나 먼저 활짝 핀 채 발견되었다. 사진 속 "기후비상 시대,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지난 일주일 내내 떠올랐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고, 코로나와 같은 예상치 못한 질병과 어떤 극심한 폭우와 태풍과 한파와 폭설을 겪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여름에는 기록적인 폭염이 매년 '역대'급으로 찾아온다. 나의 아이가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내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시대의 봄에도 눈꽃 같은 벚꽃이 있을까. 아니, 봄이란 단어가 존재는 할까.
전 세계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했고 한국도 동참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 대비 37%를 줄인다는 목표도 발표했다. 내가 당신이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수거를 하고 조금 불편한 생활을 하면 되는 일일까. 벚꽃 뒤로 보이던 수많은 크레인과 콘크리트를 붓는 레미콘과 사람만큼 많은 저 자동차와 짓고 부수고 만들고 사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도시는 매일 뜨겁기만 한데 말이다.
이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내 아이가 호호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내가 아주 어렸을 땐 이 길이 온통 눈꽃 같은 꽃이 피었었지. 참 아름다웠어"라고 말하지 않기를. 잃은 것에 대한 탄식이 없기를. 이미 잃고 있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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