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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의미 있는 장애인 고용 실험장, 희망별숲을 가다

입력
2023.04.06 04:30
수정
2023.04.06 14:3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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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일자리가 없다' 시리즈 1회
삼성전자 산하에 발달장애인 직원으로 구성된 자회사 설립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희망별숲 사무실. 희망별숲은 삼성전자에서 발달장애인을 채용하기 위해 만든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최연진 기자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희망별숲 사무실. 희망별숲은 삼성전자에서 발달장애인을 채용하기 위해 만든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최연진 기자

지난달 30일, 삼성전자 산하에 특이한 자회사가 문을 열었다. 희망별숲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이 회사는 직원 대부분이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란 업무를 미세하게 나누고 표준화해서 장애인들이 한 가지 일을 익히면 일할 수 있는 회사다. 즉 삼성전자 산하에 발달장애인들을 직원으로 둔 회사가 설립된 것이다.

고용노동부 등 정부와 장애인 단체 등에서는 희망별숲을 의미 있게 본다. 국내에서 발달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회사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은 지적 수준이 평균 5, 6세에 머물고 자폐 성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 직원이 약 10만 명이어서 3.1%에 해당하는 3,100명의 장애인을 의무고용해야 한다. 따라서 아직도 많은 인원을 채용해야 하지만 미고용 부담금 납부로 피해 가지 않고 희망별숲을 통해 직접 채용에 나섰다. 장애인 의무고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다른 기업을 비롯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강석진 희망별숲 대표는 "발달장애인은 갈 곳이 없어 취업률이 1%도 되지 않는다"며 "대기업들이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업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희망별숲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와 자문 계약을 맺고 발달장애인 52명을 직원으로 채용해 과자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과자는 경기 기흥, 화성 등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내 식당 8곳에 직원들 간식으로 공급된다. 1990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오랫동안 인사 업무를 하다가 희망별숲을 맡은 강 대표는 "하루 3,000개 과자를 생산할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생산량이 아니라 장애인 직원들에 대한 대우"라고 말했다.

희망별숲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들이 과자를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희망별숲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들이 과자를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경기 용인시 서천로 원희캐슬지식산업센터 2층에 위치한 희망별숲 사업장이다. 지난 3일 방문한 사업장은 400평 규모로 생각보다 컸다. 이 중 300평 규모에 생산 시설이 있고, 한창 공사 중인 100평 규모는 장애인들을 위한 휴식 공간이다. 강 대표는 "발달장애인 사업장은 휴식 공간이 중요하다"며 "뜻하지 않은 일로 흥분한 발달장애인을 옆에서 달래려고 다독이면 더 흥분하는데 이럴 때 안락의자가 비치된 휴식 공간에 혼자 놓아두면 스스로 호흡을 조절하며 안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발달장애인들은 오전과 오후로 나눠 4시간씩 근무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 근무 시간을 줄였다. 생산 시설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위생 기준인 해썹 인증에 엄격하게 맞춰서 머리와 손, 발을 모두 감싸는 위생복을 입고 강한 공기를 뿜어내는 에어 샤워 시설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들은 임금을 최저시급보다 약 10%가량 더 받는다. 강 대표는 "월평균 12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며 "따로 삼성전자의 복리후생 제도를 많이 가져왔다"고 말했다.

도서 구입, 영화 관람 등 문화생활을 위한 복지 포인트를 지급하고 회사가 절반 부담하는 개인연금도 가입했다. 강 대표는 "각종 복지 제도는 장기근속을 위한 배려"라며 "5~6% 급여 인상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월 2회 자연체험 등 야외 활동도 제공한다. 강 대표는 "가정에서 걱정돼 밖에 잘 내놓지 않다 보니 발달장애인의 30%가량이 어린 나이에 운동 부족으로 성인병을 갖고 있다"며 "이를 감안해 야외 체험 행사 등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희망별숲은 문을 열기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지원자가 몰렸다. 강 대표는 "장애인고용공단, 용인시청, 베어베터 홈페이지 등을 통해 채용공고를 냈는데 지원자가 많았다"며 "스스로 출퇴근 가능하고 일하려는 의지와 관리자의 지시 수용 여부 등 3가지 기준을 고려해 뽑았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1시간 이상 걸리는 곳에서 출퇴근하는 발달장애인 직원들도 있다. 경기 군포에 사는 발달장애인 이승빈(21)씨는 혼자서 1시간 30분가량 전철을 타고 희망별숲에 출근한다. 군포 e비즈니스 고교에 재학하는 그는 학교에 다니며 일을 한다. 그는 "2월에 선발돼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제과 제빵 훈련을 받고 입사했다"며 "일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를 많이 사귀어 좋다"며 "부모님들이 너무 좋아해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기쁘다"고 덧붙였다.

강석진 희망별숲 대표가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만든 빵과 과자를 담는 상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최연진 기자

강석진 희망별숲 대표가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만든 빵과 과자를 담는 상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최연진 기자

희망별숲이 겨냥하는 것은 단순 일자리 제공이 아니라 발달장애인들과 사회의 접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강 대표는 "희망별숲은 이 사회에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것을 지향한다"며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만들 필요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장애인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희망별숲은 발달장애인 채용을 계속 늘릴 방침이다. 강 대표는 "올해 120명의 발달장애인을 채용할 계획"이라며 "삼성전자의 장애인 채용과 별개로 전기자동차 충전 등 다양한 사업을 개발해 발달장애인 채용을 계속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이가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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