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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법 외 '대통령 거부권' 유력한 법안 추진하는 민주당 속내는

입력
2023.04.04 04: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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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4일 양곡법에 '1호 거부권' 행사 방침
野 추진 간호법·방송법 등도 거부권 유력
'잦은 거부권=독선' 이미지 부각 의도
野 지지층 결집 속 '입법 독주' 부담도 커


신정훈(왼쪽),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신정훈(왼쪽),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이르면 4일 국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예정이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 행사로, 2016년 5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원회의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7년 만이다.

양곡법 이어 간호법 방송법 노란봉투법 대기 중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양곡관리법 외에 여권이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내비친 간호법과 방송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개정안 등에 대해서도 의석수를 앞세워 조만간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실보다 득이 크다는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사례. 그래픽=송정근 기자

역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사례. 그래픽=송정근 기자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3일 "민생에 애쓰는 민주당의 모습을 강조하는 동시에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거부권은 대통령의 강력한 무기이지만 동시에 자주 쓰면 오만과 독선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3권 분립 등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될수록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건수가 줄어드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건수가 45회에 달했지만 박정희(5회), 노태우(7회), 김영삼·김대중(각각 0회), 노무현(6회) 전 대통령 당시엔 크게 줄어들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건수가 각각 1회, 2회에 그쳤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거부권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방침을 계기로 민주당은 '독선 프레임' 굳히기에 들어갔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쌀값 정상화법(양곡관리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정부 입장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고 국회의장 수정안도 반영했지만, 정부·여당은 이런 대승적 차원의 조정안에 대해서조차 '답정너'(결과를 정해놓고 상대에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 거부권을 행사하며 농민을 겁박하고 야당과 대결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3일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지난달 23일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윤 대통령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양날의 검'

'다수 의석을 줬더니 뭐 하느냐'는 지지층의 불만을 달래는 차원이기도 하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지지층 이완을 막고 결집을 꾀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측면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법안들을 보면 농민(양곡관리법), 간호사(간호법), 노조(노란봉투법), 공영방송 관계자(방송법) 등 수혜자가 비교적 뚜렷하다는 게 눈에 띄는 대목이다. 배종찬 소장은 "법안의 수혜자는 확실히 내 편(민주당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반면, 반대자들은 법안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법 추진에 그만큼 민감하지 않다"고 말했다.

여권이 반발하는 법안을 의석수를 앞세워 강행 처리하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라는 프레임에 갇힐 우려도 있다. 엄 소장은 "국정 발목 잡기라는 이미지가 쌓여 중도와 무당층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 소장은 "민주당이 하고 싶은 법안에는 찬성표를 몰아주다가 이재명 대표에 대한 2차 체포동의안이 들어올 경우 반대표를 던진다면 역풍이 시작되는 방아쇠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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