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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회담의 '고차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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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질서와 안보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용어들 중에서 '다자주의'만큼이나 이상적인 단어도 많지 않을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국제사회는 국제연맹이나 국제연합과 같은 다자주의 제도를 고안해 냈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국가 간 분쟁을 예방하고 안보정책을 조율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다자안보 협의체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다. 그러나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동북아시아만큼 다자주의의 토양이 척박한 지역도 많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다자주의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역사 문제이다. 한일·중일 간에는 근대사 인식을 둘러싼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고, 한중 간에는 고대사와 관련한 뇌관도 잠복해 있다. 역사와 영토, 안보와 통상 등 다자협력을 통해 해결해야 할 현안들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지만 무엇 하나 명쾌한 해법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시시각각 임계점을 향해 치닫는 대만해협의 긴장과 북한발 위협을 통제하기 위해 동맹을 통한 억제도 힘에 부치는데 다자주의에 기대를 걸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러다 보니 동북아시아에서 다자주의는 늘 '양자동맹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조건부 명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2000년대를 전후로 다자주의 대신 3, 4개국의 네트워킹을 통한 소(小)다자주의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출현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중국의 급부상을 지역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9·11 테러 이후 비전통 안보 위협이 증대한 것도 소다자주의의 등장을 부추겼다. 1999년 에이펙(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고, 2000년에는 미국-일본-호주의 3자 전략대화가 개최되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는 인도태평양 전략 이행의 핵심적 수단으로 오커스(AUKUS)와 쿼드(Quad) 같은 소다자 동맹과 협의체가 등장했다. 한미일 3국도 이미 소다자 협력의 무대를 동북아시아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넓혔고 협력의 범위 역시 사상 최고 수준으로 확대했다.
올해 동아시아 소다자 네트워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지점은 한중일 3자 협력이다. 12년 만에 열린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2019년 이후 중단되었던 한중일 정상회담 연내 개최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한중일 정상회의를 재가동해 역내 발전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최근 중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한중일 정상회의 재가동 필요성에 동의했다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
1999년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아세안 플러스 스리(ASEAN+3)'라는 형식을 빌려서였다. 금융위기를 먼저 겪었던 동남아 국가들이 한중일 3국 정상을 초청하는 방식이었다. 당시만 해도 동아시아 금융위기 공동대응과 재발 방지라는 공동목표가 있었고, 한중일 3국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위한 분위기도 제법 무르익었었다. 한미일 네트워크를 통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는 한편 한중일 플랫폼을 활용해 역내 경제통합을 이루자는 역할분담론의 명분이 작동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의 탈(脫)중국화 바람 속에서 한중일 협력의 이상이 어느 정도의 동력을 유지할지는 사실 의문이다. 기후변화와 재난 대응 또는 대중문화 및 미래 세대 교류 등 새로운 소다자 협력의 모멘텀을 찾아야 할 쉽지 않은 과제가 세 나라 사이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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