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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덕후'가 훔친 2호선 열차 창문…"2021년에 단종된 '레어템'"

입력
2023.03.31 13:00
수정
2023.03.3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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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떼어내 가방에 담아
교통공사 "'철도 덕후' 추정"
"31일까지 자수하면 선처"
2020년엔 '롤지' 도난 사건도

'철도 덕후'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지난 25일 밤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반개창을 떼어내 사라졌다. 이 차량은 승객 안전 우려로 운행에 투입되지 않고 차고지에서 대기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제공

'철도 덕후'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지난 25일 밤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반개창을 떼어내 사라졌다. 이 차량은 승객 안전 우려로 운행에 투입되지 않고 차고지에서 대기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제공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승객이 열차 창문을 뜯어가는 황당한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철도 덕후’ 소행으로 보고 경찰 신고에 앞서 철도 동호인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통해 ‘자수’ 를 권고했다. 철도 덕후의 열차 부품 절도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31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남성 A씨는 25일 오전 0시 50분쯤 지하철 290편성 4호차(2490칸)에서 노약자석 위쪽 창문을 조심스레 뜯어내 준비해 온 가방에 넣고 신도림역에서 하차해 사라졌다.

서울교통공사는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해당 남성의 범행을 확인한 후 철도 덕후 소행으로 판단하고 경찰 신고에 앞서 29일 열차 관련 커뮤니티에 “31일까지 군자기지로 반납 시 선처하겠다. 창문을 돌려달라”는 글을 올렸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단순 절도범이 아닌 철도 덕후의 소행으로 본 이유에 대해 본보 통화에서 “드라이버 등 도구를 활용해 조심스럽게 창문을 뜯어낸 것으로 보인다. 훼손이나 절도보다는 ‘굿즈(동호인들이 수집하는 애장품)’를 모으려는 목적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남성이 훔친 창문은 승객 머리 위쪽 높이에 설치돼, 창문의 일부만 살짝 열 수 있도록 한 ‘반개창’ 형태였다. 이런 창문이 부착된 열차는 동호인들 사이에서 반가운 존재다. 열차 에어컨 가동률이 낮았던 과거에는 창문을 열고 열차 내 온도를 낮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반개형 열차가 보편적이었지만, 이제는 승객이 창문을 열 수 없는 통창형으로 점차 교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반개창이 달린 열차는 2021년 마지막으로 생산됐다. 지난해부터 전동차 업체가 생산한 열차부터는 모두 통창형이다.

과거 전동차에서 사용했던 롤지(행선지 표시기). 유튜브 '대중교통 영상 제작소' 캡처

과거 전동차에서 사용했던 롤지(행선지 표시기). 유튜브 '대중교통 영상 제작소' 캡처

구형 열차가 사라져 가는 것을 아쉬워한 철도 동호인의 열차 부품 도난 사건은 2020년 2월에도 있었다. 당시 정모(15)군 등 5명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10개에 달하는 지하철 롤지(측면 행선기)를 훔쳤다. 이들은 지하철 롤지를 훔친 이유로 “철도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다”며 “롤지를 갖고 싶어서 ‘철도 덕후’끼리 모여 훔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들이 훔쳤던 롤지도 스크린도어 설치 확대로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였다.

서울교통공사는 29일 서울 성동경찰서에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교통공사가 확보한 CCTV 영상에 따르면, 창문을 뜯어간 사람은 키 170~180㎝ 사이의 보통 체격 남성으로, 짧은 스포츠형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범행 당시 하얀 줄이 있는 검은색 트레이닝복 상의와 어두운 색 하의 차림이었으며, 흰색 바닥의 어두운 계열 운동화와 짙은 색 가방을 착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반개형 창문 열차는 비중이 줄기는 하겠지만 당분간은 계속 볼 수 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반개형 창문 열차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동호인들을 향해 “반개창이 있는 차량은 2020년까지 반입했다”며 “통상 열차 사용 연한이 30년에 달하는 만큼 당분간 지하철역에서 계속 볼 수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전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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