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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보다 앞서는 브랜드 '서울', 한국 밀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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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지역별 인터넷 속도 편차 탓에 온라인 행정서비스 지원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서울시는 메타버스까지 활용하고 있습니까. 디지털 책임자를 보내봐야겠네요.” (사디크 칸 영국 런던시장)
“게임 같은 창의적 산업부터 관광까지 여러 분야에서 교류하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코펜하겐과 서울을 잇는 직항편이 없네요. 항공편부터 빨리 신설했으면 합니다.” (소피 안데르센 덴마크 코펜하겐시장)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에 참고할 선진 사례를 둘러보기 위해 지난달 유럽순방에 나섰던 오세훈 시장이 덤으로 확인한 서울의 경쟁력이다. 영국 런던, 덴마크 코펜하겐, 아일랜드 더블린 등 주요 글로벌 도시 수장들이 여러 분야에서 교류 협력을 하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다.
세계 유수의 도시들이 정책 자문을 구하러 찾아오고, 글로벌 투자자들은 서울의 산업 인프라에 주목한다. 세계를 휩쓴 ‘K팝ㆍK드라마 열풍’과 맞물려 국제회의 장소로도 인기가 좋다. 서울시가 지난달 초 주한 외국 공관을 대상으로 ‘서울 세일즈’를 펼쳤는데, 80여 명의 각국 대사가 참석했다.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중앙 부처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서울시는 종합 행정을 통해 시민들 삶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 관심을 모았다. 서울시 차원의 ‘외교’가 대한민국 이미지와 브랜드를 밀어올린 셈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우수한 정책은 도시 경쟁력의 핵심이자 최고의 외교 자산. 특히 서울의 교통 시스템과 스마트시티 기술력은 선진국 주요 도시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세계 3위(13만 달러)에 오른 아일랜드 수도이자 정치ㆍ경제 중심지 더블린이 대표적이다.
대중교통ㆍ자전거 보행량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 중인 더블린에선 서울의 ‘토피스(TOPIS)’ 운영 노하우를 전수받아 활용할 계획이다. 토피스는 서울시내 도로 교통량과 신호 시스템 등 교통 제반 정보를 실시간으로 관리ㆍ분석하는 시스템이다. 더블린 교통 책임자 매기 오도넬은 “토피스는 더블린의 교통체계에 비해 훨씬 발전된 플랫폼”이라고 평가했다. 두 도시는 정책 교류를 계기로 오 시장 방문 당시 우호협력도시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서울시가 현재 교류협력 중인 도시는 49개국 75곳에 달한다.
런던에서 열린 세계 건강도시 파트너십 시장회의에선 서울시의 금연 정책이 화제에 올랐다. 길거리에서 흡연자를 쉽게 볼 수 있는 여느 유럽 도시와 달리, 서울은 교통시설 주변과 통학로, 유동 인구가 많은 거리 등 1만9,000여곳을 금연구역으로 정해 간접흡연 피해를 막는다는 얘기가 소개됐기 때문이다. 런던시 보건부는 서울시에 자료 공유를 요청해 정책 검토에 들어갔다.
서울시 정책 수출ㆍ지원 건수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1개국 69개 도시에서 99건에 달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8,121억 원 규모다. 이종현 서울시 정책수출사업단장은 “각국 도시와의 교류가 더 활발해지면 엄청난 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1년 사이 멕시코 외교장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총리, 아랍에미리트(UAE) 행정청장, 스위스 바젤 주지사, 콜롬비아 보고타시장, 사우디아라비아 주택장관, 스페인왕립축구협회장 등이 서울을 찾아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국제적 핫플레이스로 변모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28일 칼판 사이드 무바라크 알 슈에일리 오만 주택도시계획장관은 “서울의 대중교통 전문가를 오만 수도 무스카트로 파견해 정책 수립에 도움을 달라”고 오 시장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미중 갈등 여파로 그간 국제회의 장소로 이용됐던 홍콩과 싱가포르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대안도시로도 부상 중이다. 9월 열리는 세계도시정상회의 시장포럼과 오 시장이 부의장을 맡은 C40도시기후리더십그룹 아시아ㆍ호주 시장회의, 10월 국제도시조명연맹 아시아 도시조명 워크숍과 세계건축가연맹(UIA) 아시아ㆍ태평양 총회 등 여러 국제회의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올해 초엔 2025년 세계정치학회총회와 세계경제학자대회 유치에도 성공했다. 조혜정 서울시 국제협력과장은 “지정학적인 이점에다 K컬처 덕분에 호감도가 높아 국제회의에 적합한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덕분에 시장의 국제적 인지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오 시장의 유럽 순방도 세계 건강도시 파트너십 시장회의 초청을 계기로 성사됐고, 이 자리에서 회의를 이끈 블룸버그재단 설립자 마이클 블룸버그 의장은 오 시장을 7월 블룸버그재단과 하버드대가 주최하는 리더십 행사에 초청했다. 소피 안데르센 코펜하겐시장도 건축에 관심이 많은 오 시장을 같은 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UIA 세계건축대회에 초대하며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시장의 역할을 소개해 달라”고 제안했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이런 즉흥적인 제안은 눈치 보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는 도시들 사이의 협력이기에 가능하다.
도시가 직접 ‘경제 외교’에 뛰어드는 건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정부가 주도할 때보다 정치적ㆍ실무적 장애물이 적고, 의사 결정 과정이 간소해 업무처리 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서울은 홍콩을 대체하는 아시아 금융중심지로 도약한다는 비전 아래, 기업의 해외 진출과 해외 자본의 서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담 기관인 서울투자청도 설립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서울은 최근 영국 글로벌 컨설팅그룹 지옌사가 분석한 ‘국제금융센터지수’에서 130개 도시 중 10위를 기록했다. 프랑스 파리(14위), 일본 도쿄(21위)보다 높다.
대통령직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 회장 직무대행은 “금융허브, 물류허브 경쟁은 국가가 아니라 도시가 하는 것”이라며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선 국가가 지방정부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성과가 주목 받는 것은 국가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울이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서 대외 접점을 늘리고, 영향력을 끼치면 ‘코리아’ 브랜드와 국가 경쟁력이 함께 올라간다. 백지아 서울시 국제관계대사는 “지방정부의 외교 자산이 곧 한국의 외교자산이고, 대외 관계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업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지방 외교의 역할과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데 반해 인력과 조직, 예산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정이다. ‘실ㆍ본부ㆍ국’ 같은 상위 조직이 아닌, 불과 30명 규모 ‘과ㆍ팀’ 단위 조직이 국제 협력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중요 분야에는 외부에서 임기제 공무원을 별도 채용하기도 하나, 늘어나는 국제 교류 수요에 비하면 충분하지 않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장기적 관점에서 서울시라는 조직 자체의 국제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책 공유가 늘어나는 인프라 관련 분야는 국제 교류를 보편 업무로 소화할 수 있도록 외교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른 예산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 시 행정과 별도로 전담 기구 설립도 한 가지 대안으로 거론된다. 백 대사는 “지방정부가 어떻게 조직ㆍ인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도시 간 교류 협력의 기회는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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