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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 합동공연' 보고 지연 탓? 방미 한 달 남았는데 안보실장 교체 진짜 이유 뭘까

입력
2023.03.30 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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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9일 전격 사퇴한 건 한미정상회담 행사 일정 조율 실패가 직접적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신설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일명 칩스법)에 우리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관철하지 못했다는 내외부의 평가가 복합적으로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경질 인사'는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한미정상회담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대미외교를 총괄하는 김 실장이 갑작스럽게 사퇴한 만큼 일반적인 '의원 면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 측 공연 제안 누락에 윤 대통령까지 '대노'

김 실장의 사퇴는 교체설이 불거진 지 불과 하루 만에 단행됐다. 김일범 의전비서관에 이어 최근 이문희 외교비서관까지 자진사퇴하자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김 실장 교체 여부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이 "사실과 다른 기사"라고 공식 부인하면서 교체설이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전날 윤석열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에서 사의의 뜻을 전달했고, 윤 대통령은 고심 끝에 이날 오후 늦게 실장 교체 결심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전날 대통령실이 교체설을 공식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김 실장이 이날 직접 자진 사퇴의 뜻을 밝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4월 방미 일정 조율 중 생긴 실책에 대한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한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 외교당국 등에 따르면, 질 바이든 여사의 아이디어로 미국 측이 제안한 블랙핑크와 미국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합동 공연이,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의 더딘 대응으로 무산 위기까지 갔었다. 특히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미국 측 제안을 받은 안보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행사 협의를 미루고 이행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사실을 최근 열린 재외공관장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윤 대통령이 주재한 사전점검회의 과정에서 드러났고, 윤 대통령이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방미 조율 과정서 부담 과중... "성과 도출에 부담 컸을 것"

일각에선 이문희 외교비서관에 이어 김 실장이 교체된 것은 대미외교를 총괄하는 안보실 라인의 업무능력 부족이 누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실장이 지난 5일 미국을 방문해 4월 한미정상회담 의제를 직접 조율했고 이 과정을 이 비서관이 보조했지만, 반도체법 같은 미국의 산업정책에 대한 우리 측 이해가 관철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도 미국 반도체법의 향방이 가장 큰 관심사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12년 만의 국빈방문이라 성과 발표가 꼭 필요한 상황인데 국내에서 가장 관심인 경제적 성과를 도출하는 데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의 사퇴가 차기 총선 스케줄에 맞춰 정치인 출신 장관과 공관장들의 보직 이동이 필요하다는 요구와 맞물리면서 여권과 대통령실 내 파워게임에 밀린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이 김 실장의 사퇴 사실을 공개한 뒤 한 시간도 안 돼 조태용 주미대사의 차기 안보실장 내정 사실을 발표한 것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여권에서도 윤 대통령의 방미 이후 내년 총선 출마설이 나오는 박진 외교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교체와 맞물려 외교안보 라인 전반을 개편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또 일각에선 김태효 안보실 1차장과의 알력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대통령실은 김 실장의 사퇴는 경질성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날 입장대로 윤 대통령은 안보실장 교체를 검토하지 않았지만 김 실장이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며 “윤 대통령은 만류하신 것으로 알지만 김 실장의 피력에 고심 끝에 수용했다”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환영식을 마친 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도쿄=서재훈 기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환영식을 마친 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도쿄=서재훈 기자


4월 방미, 5월 방일 등 주요 일정 줄줄이... 차질 우려

대미외교를 총괄했던 김 실장이 물러나면서 4월 미국 국빈방문과 5월 주요 7개국(G7) 계기 한미일 정상회동 등 주요 외교 일정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당국자는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백악관 입장에서도 그동안 협상 카운터파트였던 김 실장의 사퇴를 아쉬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계 개선의 첫 발을 뗐지만 강제징용 문제와 일본 교과서 왜곡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는 대일 외교에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안보실은 여름쯤으로 예상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을 통해,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나오지 않았던 일본 측의 '성의 있는 조치'를 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다만 대일 외교의 경우 사실상 김태효 1차장이 주도했던 만큼 문제가 없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외교 일정 차질 우려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관장회의를 위해 한국에 온 조태용 신임 안보실장이 곧바로 인수인계 작업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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