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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피해 나무 90%가 발전소 땔감으로... "탄소배출 가속, 최악의 나무 사용법"

입력
2023.03.30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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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방문한 경북 울진의 산불피해목 긴급벌채 집하장. 벌채된 나무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눈대중으로 봐도 절반 이상이 지름 12cm를 넘어 보이지만, 울진군은 이 중 15%만 지름 12cm를 넘는 '원목'에 해당한다고 봤다. 울진=김현종 기자

16일 방문한 경북 울진의 산불피해목 긴급벌채 집하장. 벌채된 나무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눈대중으로 봐도 절반 이상이 지름 12cm를 넘어 보이지만, 울진군은 이 중 15%만 지름 12cm를 넘는 '원목'에 해당한다고 봤다. 울진=김현종 기자

지난해 3월 발생한 울진 산불의 피해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약 54배인 1만4,140헥타르(ha)였고, 불에 탄 나무들을 긴급 벌채해야 할 면적은 749.3ha에 달했다. 벌채한 나무를 활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대신 바이오매스 연료로 태우거나, 불에 탄 껍질만 벗긴 뒤 속살로 가구(보드)를 만드는 것이다.

두 방식 모두 장기적으로는 탄소가 배출되는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차이 난다. 화력발전소에서는 나무를 태울 때 즉각적으로 탄소가 배출된다. 나무가 자라면서 흡수한 탄소가 연소 과정에서 공기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이 배출량은 석탄(유연탄)보다도 많다.

반면 가구로 만들 경우 탄소는 즉각적으로 배출되지 않고 나무에 머문다. 보통 가구 수명이 10~20년이니, 그 기간 동안은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다. 가구를 폐기한 후에도 폐목재를 가구로 재활용할 경우 탄소 저장 기간은 늘어난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바이오매스 발전을 '최악의 나무 사용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후 붕괴가 임박해 탄소 배출량을 급격히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바이오매스 화력 발전은 목재의 수명주기를 한순간에 끝내고, 탄소 배출도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일보가 지난해 울진 산불의 피해목 처리 현황을 파악한 결과, 피해목 90%가 발전소 연료로 쓰이고 있었다. 바이오매스를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만큼 우대하는 정책 때문이다. 가구 제조업체들은 "바이오매스에 밀려 원료조차 수급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울진 산불 피해목 90%가 발전소에

2013년 완공된 한국동서발전의 동해 바이오매스 발전소 전경. 이 발전소는 설비용량 30MW로, 목질계 바이오매스로 연소된다. 동서발전 제공

2013년 완공된 한국동서발전의 동해 바이오매스 발전소 전경. 이 발전소는 설비용량 30MW로, 목질계 바이오매스로 연소된다. 동서발전 제공

29일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상북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7일까지 울진 산불 피해목 긴급벌채 판매량은 6,156톤인데 이 중 89.4%(5,504톤)가 발전소에 판매됐다. SGC에너지의 군산 발전소가 3,463톤, 동서발전 동해발전소가 2,041톤 사들였다.

국내 발전사들은 신재생에너지 조달 수단으로 바이오매스를 20%가량 사용하고 있다. 바이오매스는 국내외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인정받고 있는데, 나무를 태울 때 탄소가 배출되지만 다시 심은 나무가 자라면서 탄소를 재흡수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실제 바이오매스로 화력발전을 하면 서류상 탄소 배출량은 '0'으로 기재된다. 물리적으로는 에너지 1테라줄(TJ)당 탄소가 11만2,000kg 배출되지만, 회계 장부상으로는 배출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 배출량은 나무를 자른 벌채 사업자의 몫이 된다. 발전소 입장에서는 석탄(1TJ 당 9만4,000kg)보다도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서도 배출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셈이다.

그 때문에 발전사들은 바이오매스 활용에 적극적이다. SGC에너지 군산 발전소는 바이오매스 발전소 60MW(전소·專燒)와 250MW(혼소·混燒)를 운영한다. 동해발전소는 전소 30MW다. 2021년 경북·충북 산불 피해목 8만1,915톤, 2020년 울산·경북 산불 피해목 15만6,280톤이 바이오매스 발전에 쓰였다. 2021년 기준 바이오매스는 전체 신재생에너지 전력 생산량의 18.2%를 차지했다.

동서발전 관계자는 "바이오매스는 IPCC 등에서 인정하는 탄소중립 원료원"이라며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를 사용해 산사태와 병해충 확산 등 2차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SGC 에너지도 "폐목을 방치할 경우 썩는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된다"며 "정부에서도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 활용을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지나친 REC 가중치… 바이오매스 발전 '쏠림' 현상

울진의 한 공터에 긴급 벌채한 목재가 쌓여 있다. 울진=김현종 기자

울진의 한 공터에 긴급 벌채한 목재가 쌓여 있다. 울진=김현종 기자

문제는 발전사가 구매력과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이용해 바이오매스를 대거 공급받으면서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REC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장려하기 위한 제도로, 신재생에너지로 전기 1MWh를 생산하면 가중치에 따라 REC를 발급한다. 산불피해목 등을 활용하면 1.5~2의 가중치가 적용되는데, 이는 가장 장려되는 발전 방식인 건물 태양광(1.5)이나 연안해상풍력(2.0)만큼 높다.

REC는 전력 거래시장에서 1개당 7만 원 선에 거래하거나, 발전사의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제도(RPS) 할당량을 충족시키는 데 사용한다. 동해발전소는 연간 REC 23만여 개, SGC 에너지 군산 발전소는 200~250만 개를 발급받는다.

발전사들이 바이오매스 구매에 나서면서 산불 피해목은 가격이 치솟고 있다. 김영진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가장 많은 원료를 수급한 SGC 군산발전소는 나무 1톤을 약 17만3,000원에 사왔다. 동서발전 동해발전소는 12만5,000원에 구매했다. 반면 목재회사들은 10만 원 선에 피해목을 사들였다. 이 때문에 가구 제조업체들은 울진 산불 피해목 판매량의 10% 정도만 구매할 수 있었다.

한 가구제조업체 관계자는 "발전사처럼 나무를 17만 원에 사올 경우 차익이 4만 원밖에 남지 않는다"며 "부대비용을 감안하면 손해를 보게 돼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산불피해목, 정말 ‘미이용’인가요

울진군의 산불피해목이 잘려 나간 밑동. 까맣게 타서 가구 재료로 사용할 수 없는 껍질과 달리 속살은 멀쩡하다. 울진=김현종 기자

울진군의 산불피해목이 잘려 나간 밑동. 까맣게 타서 가구 재료로 사용할 수 없는 껍질과 달리 속살은 멀쩡하다. 울진=김현종 기자

산림청도 바이오매스의 탄소 배출 논란을 알고 있다. 2021년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 규정을 신설하고, 그 밖의 바이오매스는 REC 가중치를 낮췄다. 바이오매스를 목적으로 한 벌채를 지양하고, 일반 산림 활동에서 발생한 부산물만 사용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어차피 버릴 나무를 최종 재활용할 때만 REC 가중치를 주겠다'는 것이다. 숲가꾸기·재선충피해목·산불피해목 등이 해당한다. 산림청은 "원목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목재는 에너지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원목 규정이 모호하게 적용되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산림청의 규격 고시에 따르면, 원목은 지름이 12㎝ 이상인 목재를 뜻한다. 서까래나 조경용재로 사용할 수 있다. 목재 바이오매스(목재칩)는 산불 피해목 중 지름 6~12㎝인 '원료재급'을 사용해야 REC 가중치를 적용받는다. 울진군은 산불 피해목의 15%가 원목에 해당하고, 85%는 원료재급이라고 판단했다.

울진의 또 다른 산불피해목 집하장에 피해목과 톱밥으로 갈린 목재칩이 쌓여 있다. 목재 파쇄기(사진 가운데) 주변에는 방금까지 잘려 나간 목재가 뒹굴고 있는데 한눈에 봐도 지름이 12cm를 넘었다. 울진=김현종 기자

울진의 또 다른 산불피해목 집하장에 피해목과 톱밥으로 갈린 목재칩이 쌓여 있다. 목재 파쇄기(사진 가운데) 주변에는 방금까지 잘려 나간 목재가 뒹굴고 있는데 한눈에 봐도 지름이 12cm를 넘었다. 울진=김현종 기자

그러나 지난 16일 방문한 울진 산불 피해목 긴급벌채 집하장에선 지름 12㎝가 훌쩍 넘는 원목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방금까지 작동한 듯한 목재 파쇄기 안과 주변에도 이런 원목들이 놓여 있었다. 작업장 관계자는 "파쇄한 톱밥(우드칩·바이오매스)은 전부 발전소로 간다"고 귀띔했다. 서까래나 조경 용재로 활용할 수 있는 원목이 탄소배출이 심한 화력발전 원료로 사용되는데, REC 가중치까지 부여받는 것이다.

송한새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가구와 바이오매스 모두 나무를 생태계 일부가 아닌 산림 자원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면서도 "바이오매스는 즉각적으로 다량의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최악의 나무 사용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울진=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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