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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우리를 일으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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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유엔여성기구 호주지부의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해 43호주달러를 기부했다. 원화로 3만7,158원이었다. "휴대용 태양광 스마트폰 충전기를 전기가 부족한 지역에 사는 여성 20명에게 보낼 수 있는 돈"이란 얘기에 마음이 열렸다.
빵도, 옷도 아닌 왜 충전기였을까. 스마트폰에는 생명을 지키고 삶을 개선할 힘이 있다. 폭력과 재해 피해를 신고하고, 최신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차별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인터넷 연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한 전 세계 성별 비율은 여성이 37%, 남성이 31%였다. 여성 인터넷 이용자는 남성보다 2억5,900만 명 적었고, 여성의 휴대전화 보유율은 남성보다 12% 낮았다.
여성들을 더 적극적으로 인터넷에 연결시키자,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자는 것이 태양광 충전기 기부에 담긴 깊은 뜻이다. 도움은 이처럼 구체적이고 사려 깊어야 한다. 주는 사람의 기분이 아닌 받는 사람의 필요가 우선이어야 하며, 그러려면 섬세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런 도움의 사례가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에세이집 '말의 정의'에 나온다. 오에의 아들은 장애인이다. 집 앞에서 함께 걷기 연습을 하는 중에 아들이 넘어졌다. 누군가 급히 다가오더니 아들을 일으켜 세워 주려 했다. 모르는 사람이 몸을 만지는 것에 아들은 진저리를 냈다. "우리를 내버려 둬 달라"고 오에가 말렸고, 그 누군가는 화를 내며 사라졌다.
다른 누군가는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했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오에에게 내보인 건 믿을 만한 사람을 불러 줄 수 있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아들과 오에는 일어났다. 그 다른 누군가는 끝까지 다가서지 않은 채 미소 지으며 인사한 뒤 떠났다.
둘의 선의는 같았겠으나 결과는 같지 않았다. 오에는 차이를 '주의'와 '절도'에서 찾았다. "불행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만 왕성한 사회에서 나는 주의 깊고 절도 있는 행동으로부터 새로운 인간다움을 찾아냈다. 호기심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주의 깊은 눈이 그것을 순화하는 것이다." '타인을 돕는 멋진 나'를 앞세우는 건 자기만족일 뿐이란 말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도움을 권하면서 제힘에 취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책 결정자들이 그런 유혹에 자주 빠진다. 흠뻑 취한 그들이 '구국'과 '국익'을 입에 올리면 더없이 위험해진다.
"일할 때 몰아서 일하고 쉴 때 마음껏 쉴 수 있는 자유를 주기 위해" 일주일 60시간 이상의 노동을 허용하겠다고 할 때, "장애인들이 눈비를 맞지 않고 밥 세끼 꼬박꼬박 먹을 수 있도록" 시설에 가두겠다고 할 때, "맞벌이 부부를 지원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구 감소를 막으려고" 월급 100만 원만 주면 되는 외국인 가정부를 합법화하겠다고 할 때, 그들은 선의의 효용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저리를 낸다. "우리를 차라리 내버려 두라"고 따져 보지만 듣지 않고 화부터 내니 답답하다. 그런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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