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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등바등 의사 돼서 누가 험지에서 일하려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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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대 수시모집에 1차 합격한 138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자연계(112명)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서울대를 포기하는 대신 다른 대학 의대를 택했을 것이다. 서울대 의예과는 최초 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마쳤다. 새삼스럽지 않다.
전국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17년 전에 정해진 그대로다. 자연계 수험생을 성적순으로 일렬로 세워놓으면 1등부터 3,058등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의대를 간다고 보면 된다. 과장이 섞였지만, 대체로 흐름은 그렇다. 그만큼 의대 쏠림은 가히 병적인 현상이다.
다들 의사가 되고 싶어 아우성인데, 현장에선 의사가 없다고 난리다. 소위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에 더해 흉부외과,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과목의 인력 부족은 심각하다. 지난 19일 대구 4층 건물에서 추락한 10대가 2시간 동안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전문의나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구급차에서 숨진 사건은 너무 상징적이다. 지난해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다 사망하기도 했다. 서울 대구 등 대도시에서, 그것도 대형종합병원에서도 이럴진대 외진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지방의료원 등 지역 공공병원의 상황은 참담하다.
강원 속초의료원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응급의료센터 축소운영 안내’ 팝업창이 뜬다. 의료진 공백으로 불가피하게 3월 한 달간 응급의료센터 운영 일정을 축소해 운영한다는 공지다. 목~일요일 주4일은 정상 운영하지만, 월~수 사흘은 야간에 문을 닫는다. 2월에도 그랬다. 음식점도 아니고, 병원이 그것도 급할 때 찾아야 하는 응급실이 요일제로 문을 닫는다니 당혹스럽다. “월화수 밤에는 아프지 말라”라는 공지와 다름없다.
올 1월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 중 3명이 동시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나마 월~수에 주간 진료라도 할 수 있는 건 다른 과목 전문의가 교대로 응급실 업무를 병행하기로 해서다. 인력 수급이 한시가 급한데 쉽지 않다.
1차 채용에선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기존보다 연봉을 1억 원 이상 높인 4억2,400만 원을 제시했다. ‘연봉 4억대’ 채용에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이 쏠렸지만, 지원자 3명 중 1명만 면접에 응했다. 관련 기사에 한 누리꾼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4억 원 넘는 연봉을 제시해도 싫다니… 이래서 의사, 의사 하는구나.”
전문의만이 아니라 전공의 4년 수료자까지 자격 요건을 넓혔다. 가까스로 2명이 지원했고, 1명을 뽑았다. 그래도 여전히 1명이 부족한 상황. 4차 채용은 빈손으로 끝났고, 이달 말까지 5차 채용을 진행 중이다.
제일 심란한 사람은 이 병원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원장일 것이다. 용왕식 속초의료원장은 몸도 마음도 탈진한 상태라고 했다.
- 비정상적 병원 운영이 길어지고 있다.
“2월부터 월화수 주 사흘은 응급실 야간 운영을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일반 진료과장들이 희생해 교대 근무를 하면서 주간 운영이라도 가능한 게 다행이다. 5월이 되면 정상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비상상황에 대처를 못하는 건 아닌가.
“그런 우려 잘 알고 있다. 계속 점검을 하고 있다. 119에 안내문도 보내고 주변 응급의료기관에도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었지만, 환자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고 있는 건 매우 죄송스럽다.”
- 의료진들이 오래 머물지 않으니 생기는 문제일 텐데.
“의료진 대부분은 수도권에 거주지가 있다. 급여를 많이 준다니 일시적으로 머물긴 하지만, 자녀 교육 등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지역에 오래 있으면 새로운 기술에 접근할 기회가 부족해 스스로 퇴보한다고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조금 더 기여해달라 다독여보지만, 정거장처럼 머물다 언젠가는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실 속초의료원에 많은 관심이 쏠리긴 했지만, 더 열악한 지방의료원도 많다. 한 조사에서는 35곳 지방의료원 중 절반이 넘는 20곳이 의사를 구하지 못해 일부 진료과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휴진 중인 진료과가 3, 4곳인 곳도 다수였고, 아예 수술실을 몇 달간 열지 못한 곳도 있다.
실제 지방의료원 의사 결원율은 해마다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2018년에는 7.6%였는데, 지난해에는 14.8%로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전북(26.1%) 전남(25.8%) 충북(21.3%) 등은 20%가 넘는다. 정원 4명 중 1명가량을 뽑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속초의료원이 제시한 4억 원대 연봉도 대단히 파격적인 건 아니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이 2020년 분석한 통계를 보면,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의 최고연봉 의사는 6억5,000만 원을 받았고, 강원 충남 경북에서도 4억 원 이상 연봉을 받는 의사들이 있었다. 3년 전이었는데도 그랬다. 외진 지역에서 일하겠다는 의사를 찾을 수 없으니 연봉을 올려서라도 뽑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다.
전국에 공공의료병원은 221개다. 국립대병원, 특수병원, 공단 소속 병원 등을 다 합쳐서 그렇다. 이 중 지역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곳은 지방의료원 35곳, 적십자병원 6곳 등 41곳으로 보면 된다.
공공의료의 역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민간병원이 돈이 안 돼서 하지 않는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역할이 기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지역에 살든 최소한 비슷한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같은 국가 재난상황에서의 임무도 막중하다.
하지만 막상 한 꺼풀 벗겨보면 공공병원인지 민간병원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의료원장)은 “정부가 알아서 먹고 살라고 방치해 놓으니 제대로 굴러갈 리 만무하다”고 토로했다.
- 지방의료원들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이유는 뭔가.
“정부 자체가 공공의료를 국가의료의 중심에 놓으려는 마인드가 없다. 예산 부처는 민간병원에서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니 규모도 적고, 투자도 안 된다. 300병상이 안 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전국 지방의료원들이 들어선 입지를 보시라. 산 중턱이거나 공단 한가운데거나 교통도 제대로 닿지 않는, 땅값 싼 외진 곳이 대부분이다. 의사도, 환자도 지방의료원을 기피하는 악순환이다.”
- 그러면 지방의료원도 수익 창출에 힘을 쏟아야 하나.
“당연하다. 지방의료원은 스스로 수익을 내야 하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국가 지원만 받으면 방만하게 운영되기 때문이라는데, 너희들이 벌어서 월급 주고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공공병원답게 운영하지 못하고 민간병원 흉내를 내며 수익 창출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체성 혼란까지 온다.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다 잡으란 말이냐.”
- 코로나 극복에 큰 역할을 했는데 정부 지원은 충분한가.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2년여간 지정돼 일반 환자 입원치료는 물론 외래진료도 차질을 빚었다. 그동안 떠난 환자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정상 회복되는데 정부는 6개월을 말하지만 실제 4년은 걸릴 거라고 한다. 정부가 손실보상이라며 찔끔 지급한 돈을 거의 다 쓴 곳이 대부분이다. 연말쯤 되면 통장 잔고가 거덜나 곧 망한다는 아우성이 커질 것이다.”
실제 코로나 이전 90%에 육박했던 지역의료원 병상가동률은 코로나 이후 50%대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추가 지원은 없다고 한다. 지방의료원들이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서 우는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전담병원 지정 기간에 더해 6개월의 추가 손실보상을 해줬다. 지정 해제부터 바로 영업 회복이 된 곳들도 많다”는 게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은 흘러 넘치는데 필수의료 현장에선 의사가 없어 난리라면, 누가 봐도 의사 수를 늘리는 게 답이다. 그런데 의사들(정확히는 개원의)은, 아니 의사들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019년 설 연휴 밤샘 근무를 하다 숨진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생전에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많다는 걸 의사 말고 누가 동의할까.”
같은 통계를 두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보고 싶은 부분만 보는 건 정치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의사 인력 통계를 두고도 비슷하다. 의사 증원을 적극 주창하는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와 개원의들이 주축이 된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홍보이사의 주장은 180도 판이하다. 두 사람 얘기를 공방 식으로 구성해 봤다.
▶김윤 =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5명이다. OECD 평균 3.7명보다 훨씬 적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명에도 못 미친다.”
▷김이연 = “단일지표만으로 판단은 무리다. 의료접근성, 그러니까 얼마나 의사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같은 통계(OECD보건통계 2022)에서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우리나라가 OECD 평균의 2배를 훨씬 넘는다.”
▶김윤 = “국내 의사 진료시간은 5분이다. 유럽이나 미국은 15분 진료를 한다. 고혈압, 당뇨병 환자들이 병원에 약만 타러 왔다갔다 하는 걸 높은 접근성이라 할 수 있나. 중증환자가 제때 수술을 받을 수 있느냐가 더 유의미한 의료접근성이다. 중증응급환자 10명 중 1명이 의사가 없어서 이 병원 저 병원 떠돌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게 현실이다.”
▷김이연 = “의사 1명 배출하는데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15년이 걸린다. 인구감소 등을 고려하지 않는 인력 증원은 공급 과잉에 따른 사회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의사는 불가피하게 의료수요를 창출할 것이고, 국민의료비를 증가시킬 것이다.”
▶김윤 = “의사 정원은 한번 늘리면 절대 못 줄이는 건가. 늘리는 것도 줄이는 것도 융통성 있게 하는 게 옳지 않나. 인구감소에도 급속한 고령화로 의료수요는 상당 기간 늘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의료수요가 줄어들 걸로 예측이 되면 그때 정원을 줄이면 된다.”
▷김이연 = “우크라이나 종군기자 기피한다고 기자 10명 더 뽑으면 가겠나. 필수의료나 공공병원 환경이 열악하니 안 가는 것뿐이다. 한국의 슈바이처가 되겠다는 사명감을 갖는 의사들이 많을 거라는 환상은 버려달라. 본인이 평생 투신할 자리로 인식할 수 있도록 (수가 인상 등) 재원을 배분해 주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김윤 = “둘 다 해야 하는 거다. 그러면 의사 수를 늘리지 않고 필수의료 등의 의사 인력을 늘릴 수 있겠나.”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필수의료나 공공병원에 제 발로 걸어서 갈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의사 수를 늘리지 않으면 더욱 가지 않을 거라는 건 공공의료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조승연 회장은 "조금이라도 공공의료에까지 의사들이 흘러넘어 오려면 지금보다 최소 1,000명은 더 늘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물론 의사 증원만으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는 없다. 어쩌면 더 많이 배출된 의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점을 빼겠다”고 피부과로 몰려들지 모를 일이다. 의협 주장처럼 비급여 의료비용만 대폭 늘어날 소지도 다분하다. 의사 증원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란 얘기다.
함께 고려해봐야 할 해법의 선택지들은 이미 많이 제시돼 있다. ①공공의대를 설립해 애초 출발부터 달리해야 한다는 요구들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의협은 “공공의대에서 배출된 인력이 공공병원에 10년 이상 발이 묶이면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라지만, 의대 지원부터 길을 달리하고 교육 커리큘럼도 특화한다면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자세와 사명감 자체가 달라질 거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②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지역의사제’도 있다. 지역의대가 지역의사 선발 전형을 별도 도입해 일정기간 지역 근무를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지역의대 학생들 상당수가 수도권 출신이어서 지역에 묶어둘 방법이 없는 게 현실 아닌가. 오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의사제 취지에 부합하는 차별적 교육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그런 점에서 보자면 공공의료와 지역의료의 특성에 맞는 별도의 교육과정을 갖춘 공공의대가 좀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③수가 개편도 필수적이다. 의사들이 요구하듯, 필수진료과목에 대한 낮은 보상은 손봐야 한다. 병원은 값싼 전공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과한 업무를 견디지 못한 전공의들은 필수의료를 떠나는 악순환이다. 개원의들도 아우성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29일 "지난 5년간 소청과 의원 662개가 경영난으로 폐업했는데도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30년째 동결"이라며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④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 수도권 쏠림이 심각한 현상도 바로잡아야 한다. 큰 병원에 가는 걸 제도적으로 조금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비용을 더 지불하게 할 수도 있고, 진료의뢰서 발급을 더 어렵게 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찬찬히 따져봐야 할 것이 많지만, 그렇다고 마냥 뒤로 미뤄도 좋을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의사 구인난이 지속되면, 수술할 의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응급차 안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이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의사 정원을 늘려도, 또 공공의대를 설립해도 실제 인력이 배출되는 데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관건은 당국의 의지다. 곧 총선인데, 이 뜨거운 감자에 손을 대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훨씬 우세하다. “모든 영역에 집단이기주의가 있지만, 정책적으로 필요하다면 아주 혁신적으로 깨부숴야 한다”(용왕식 원장)는 요구에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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