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성공 신화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입력
2023.03.2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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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천재적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동시에 가진 변호사 우영우가 다양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진정한 변호사로 성장하는 대형 로펌 생존기다. ENA 제공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천재적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동시에 가진 변호사 우영우가 다양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진정한 변호사로 성장하는 대형 로펌 생존기다. ENA 제공



'우영우 신드롬의 주인공'도 결국 손들었다. 민간 통신사 KT의 다음 최고경영자(CEO) 후보인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이 갑작스레 사퇴 뜻을 밝혔다. 주주총회(31일)가 코앞이라 회사 안팎은 충격에 휩싸였다. 사상 첫 경영 공백 같은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을 직감한 이사회는 자리를 지켜 달라며 설득 중이다.

KT는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시작해 2002년 민영화 선언 뒤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누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윤 후보가 새 CEO가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1대 주주 국민연금(지난해 말 지분 기준 10.13%), 2대 주주 현대차그룹(7.79%), 3대 주주 신한은행(5.58%)에 눈길이 간다. 이들의 지분을 합치면 약 23% 정도. 반면 지분 약 43%를 갖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계적 의결권 자문기관 '글래스루이스'와 'ISS'가 윤 후보 선임 '찬성'을 권고했다. 여기에 33% 지분을 보유한 국내 소액주주 중 윤 후보 손을 들어주려는 이들이 이례적으로 주주 모으기 운동까지 펼치고 있다. 때문에 윤 후보는 주총 표 대결에서 해볼 만하다는 게 재계의 예상이었다. 1·2·3대 주주의 반대가 윤 후보 사퇴 선언의 직접 이유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윤 후보가 했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버티면 KT가 더 망가질 것 같다"는 말이 열쇠다. 여당인 국민의힘 인사들은 그를 겨냥해 "KT 이사회는 윤 사장을 후보군에 넣어 그들만의 이익카르텔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 CEO 구현모 사장의 "아바타"라며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실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게 안 되면 조직 내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손해는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보수단체가 윤 후보와 구 대표를 고발한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했다. 재계 관계자는 "외부에서 윤 후보 본인은 물론 주변을 향한 압박이 거세졌다는 말이 들렸다"고 전했다.

반면 글래스루이스는 "주주들이 우려할 만한 실질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냈다. ISS는 보고서에서 윤 후보가 해임될 경우 "기업, 주주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며 "윤 후보는 회사 사업 계획을 이끌어 갈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CJ, 현대차 등을 거치며 정보통신기술(ICT), 미디어, 모빌리티 분야 경험을 바탕으로 KT의 디지털 전환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내용도 담았다. 구현모 대표와 디지코(DIGICO·디지털플랫폼기업) 전략을 추진하며 대박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공을 세운 점에 점수를 준 것.

요즘은 회사나 경영진에 문제가 있으면 주주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여권에서 벌써 몇 달째 KT 새 대표 인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딴지를 거는 것이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앉히려는 '낙하산 작전'이라면 명백한 시장경제 질서 훼손이다. "정부는 기업 중심의 시장경제라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대통령실의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면 더 이상 민간 기업 KT 인사 개입을 멈춰야 한다. 아니면 차라리 '이 사람으로 해라'라고 콕 찍어 주든지.

박상준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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