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다. 구한말 흑백사진 속 서민용 밥그릇의 어마어마한 크기만 봐도 우리네 전통 끼니에서 차지한 밥의 위상이 짐작된다. 밥과 국이 사실상 식사의 전부였을 정도이니, 밥의 재료인 전체 알곡 중에서도 쌀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역사상 마침내 쌀의 자급을 이룬 건 1976년이 처음이었다.
▦ 6ㆍ25 전쟁 후 베이비붐이 이어지면서 인구는 매년 3%씩 급증하는데, 쌀 생산량은 그만큼 늘지 못했다. 쌀막걸리 제조가 금지됐고, 심지어 쌀을 못 먹는 ‘무미일’까지 법으로 지정돼 국수를 먹기도 했다. ‘통일벼’가 개발ㆍ보급돼 1976년 자급 달성에 이어, 1977년 쌀 수확 4,000만 석을 돌파하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농촌진흥청에 ‘녹색혁명 성취’라는 휘호로 감격의 마음을 남기기도 했다.
▦ 그때 이후 쌀 생산량은 대체로 수요를 초과해왔다. 그럼에도 쌀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으로서 위상이 여전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쌀 수입이 허용되자, 식량안보를 포기했다며 전국적인 반대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쌀 증산이 꾸준한 가운데 인구 증가세는 둔화하고, 국민 식단에도 부식이 풍부해지면서 1인당 연간 쌀 수요량도 1970년대 120㎏에서 지난해 56.7㎏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그 결과 매년 평균 30만 톤 이상이 과잉 생산됐다.
▦ 이젠 쌀 감산과 여타 식량의 증산, 농업혁신 추진이 절실해졌다. 그럼에도 최근 거대야당은 민생과 식량주권 확보를 내세워 쌀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 전량을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반면 그동안 여ㆍ야 협의조차 피해온 정부ㆍ여당은 “농업을 망칠 포퓰리즘”이라며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할 태세다. 그 경우 야당은 거센 반정부 투쟁에 나설 게 뻔하고, 정부ㆍ여당은 거꾸로 야당의 입법폭주와 무모함을 부각한다는 계산이니, 일이 결국 정치권의 ‘네 탓 싸움’에 휘말리는 게 개탄스럽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