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건축주 전태훈(48) 김성숙(49) 부부도 여느 부부들처럼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두 아이가 태어나고 출장이 잦은 남편 대신 아내가 집에 머물며 육아 라이프를 이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전망은 훌륭했지만 대로에 접해 마음대로 환기를 할 수 없다보니 호흡기가 약했던 아이들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밤낮없는 병원행이 이어지면서 부부의 생활을 옥죄어왔다. 누군가에겐 로망인 탁 트인 한강뷰 아파트의 통유리가 점점 못마땅해지던 찰나, 늘 만족스럽지 못했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이참에 오랜 꿈이었던 주택생활을 해보면 어떨까에 생각이 미쳤다. 서울에서 공기 좋고 물 좋다는 동네를 다 찾아다니던 남편은 우연찮게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 서울 은평구에서 가능성을 봤다. 그리고 결심하듯 산과 닿을 듯 접한 한옥마을 내 주택 부지를 구입했다. 북한산 아래, 부부와 두 자녀, 반려견 가을이의 건강한 삶을 보듬은 주택인 경원재(대지면적 330㎡, 연면적 259.50㎡)의 시작점이다.
오감으로 북한산을 느끼는 집
처음부터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게, 소위 평생 집으로 삼을 만큼 후회없이 짓고 싶었던 부부는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디자인그룹 꼴라보의 정문철 소장과 인연이 닿았다. 부부의 가장 큰 요구 사항은 단순하고 개방감 있는 공간을 갖추면서 주변의 자연을 최대한 집 안에 들이는 것. "집의 초점을 오직 '북한산'에 맞췄다"는 건축가의 설명에 걸맞게 집은 계획 당시부터 자연을 중심에 둔 설계를 거쳐 안팎에서 천혜의 산뷰(view)를 즐길 수 있는 집으로 완성됐다.
3층 집은 'ㄷ'자 형태로 길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자리를 잡았다. 깊이감이 느껴지는 현관과 심플하게 구성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마당, 차분한 회색톤 콘크리트 벽돌이 어우러지며 주변 한옥 주택을 닮은 듯 담담하고 단아한 인상을 풍긴다. 내부로 들어서면 시야가 보다 과감하게 열린다. 천장을 없애고 묵직한 송판 노출콘크리트로 2층 벽면 일부를 드러낸 거실은 무미건조할 수 있는 실내에 온기와 재미를 불어넣은 포인트가 됐다. 채광과 공간감을 확보한 높은 천장, 멀리 북한산과 가까이로 정원을 들인 거실 창, 이동하면서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의도한 계단은 경원재의 핵심 건축 요소다. 특히 스테인리스 와이어로 난간을 만들어 모양을 그대로 드러낸 계단은 바깥 자연을 다양한 레벨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가족들의 주 생활공간인 2층 역시 부부의 침실과 복층으로 다락방 느낌을 낸 두 자녀 방, 그 두 공간을 다리처럼 연결한 복도, 기능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비밀 세탁실과 드레스룸으로 빈틈없이 채웠는데 각 공간마다 길고 낮은 창을 적절하게 설치해 풍경을 다채롭게 들였다.
옥상 테라스, 산쪽으로 더 가까이
북한산을 모티브로 삼은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옥상 테라스다. 360도로 산뷰를 즐길 수 있는 테라스는 이 집에서 가장 트인 공간이자 앞으로는 북한산 산세를, 뒤로는 한옥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다. 1층 마당이 거실 창을 통해 자연의 흐름을 소소하게 전한다면 3층 테라스는 자연을 향해 손을 뻗어 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 설계 초기에 건축가는 이곳에 다락을 만들어 실내에서 켜켜이 겹친 앞 산 전망을 즐길 것을 제안했지만 부부의 생각은 달랐다. 전씨는 "자연을 즐기고 싶어서 이사 온 마당에 외부 시선을 의식하며 갇혀 지내고 싶지 않았다"며 "우리 가족만 머물 수 있는 야외 테라스라면 마음 놓고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적극 의견을 냈다"고 떠올렸다.
널찍하게 만들어진 3층 테라스는 건축주의 예상 그대로 쓰임이 알차다. 또 하나의 거실로 테라스를 활용하고 싶었던 부부는 벽과 유리로 외부 시선을 차단한 테라스에 아웃도어용 테이블과 체어를 놓았다. 여느 호텔 루프탑이 부럽지 않은 분위기 좋은 테라스에서 가족은 수시로 자연으로 돌아가고 사계의 변화를 만끽하며 프라이빗한 여가 생활을 즐긴다. 반려견 가을이도 수시로 외부인의 시선이 머무는 1층 마당보다 편안하게 빛과 바깥 바람을 쐴 수 있는 테라스 공간을 훨씬 좋아한다고. 정 소장은 "북한산 등산객이나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으로 유동인구가 적지 않은 동네"라며 "설계 여건상 도로 코너를 접한 집의 위치는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데 절대적으로 불리했는데 결과적으로 옥상을 마당이자 거실처럼 활용한 것이 좋은 방법이 됐다"고 설명했다.
친목 모임을 더욱 자주, 편안하게 즐기게 된 것도 테라스 덕분이다.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남편의 뜻에 따라 정 소장은 야외 테라스와 연결된 실내 공간에 바비큐 파티와 홈 캠핑을 돕는 싱크 시설을 설치했다. 그리하여 이 공간은 코로나19로 기약없는 격리생활이 시작되면서 진정으로 빛을 발하게 됐다. 이곳에서 부부는 매일 아침 식사를 하고, 바람 좋고 볕 좋은 주말에는 예외없이 지인들을 초대해 함께 파티를 연다. 전씨는 "우리 가족만 즐기기엔 아까운 환상적인 자연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주택살이의 큰 즐거움"이라며 "테라스에서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 가족끼리 보내는 오붓한 시간도 좋지만 손님이 자주 찾아와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집이 된 것 같아 무엇보다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집의 치유는 '자연'으로부터
주택살이 5년차인 건축주 부부는 드물게도 주택 거주자들이 흔히 하는 마당 꾸미기나 정원 가꾸기 같은 취미생활을 하지 않는다. 남편 전씨는 "정원을 꾸미는 것이 주택살이의 큰 즐거움이라고 하는데 이 집에서는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며 "사계절 아름다운 정원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데 아무리 마당이나 정원을 잘 가꾼들 그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다"며 웃었다. 지붕 없는 마당에서 하늘을 눈에 담고 손에 닿을 듯 다가오는 푸릇한 녹음을 내 집 정원인 듯 누리는 서울 주택 생활에 푹 빠져있는 건축주 부부. 그들은 이 집에 살면서 "주택살이의 처음이자 끝이 자연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집은 삶이 주는 위기와 고단함을 치유하는 공간이잖아요. 그런데 집이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있으려면 자연이 가까이 있어야 하더라고요. 언제나 변함없이 편안한 휴식을 주는 숲이라면 더 바랄 게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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