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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일 삼국지와 한일의 ‘현상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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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일정상회담을 낱낱이 밝혀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라.”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간 정상회담을 굴욕외교로 몰아세우는 모습은 5년 전 문재인-김정은 회담 때 야당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반국가단체와 사전에 알리지 않은 충동적 비밀 졸속회담”이라고 분노했다. 대상만 다를 뿐 ‘대북 퍼주기’와 ‘대일 퍼주기’ 프레임도 판박이다. 요미우리신문이 한국의 관계개선 노력을 ‘윤석열식 대일 햇볕정책’으로 명명한 것이야말로 흥미롭다.
한국인의 이념지형을 펼치면 왼쪽 극단에 종북, 오른쪽 끝에 매국 친일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역대 정권과 일본 자민당 내각의 충돌은 ‘대북관’이 본질이다. 미국 트럼프 정권 출현과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 그 한복판에서 한일관계의 ‘현상변경’이 시도된 건 문재인 정권 때다. 필자가 도쿄에 있던 2017년 6월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 심포지엄에 최종건 당시 연세대 교수(후에 외교1차관)가 참석했다. 문재인 대선캠프부터 관여한 최 교수가 “일본과의 ‘관계보통화’”를 언급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일본에서 오자와 이치로, 아베 신조 등이 들고 나온 ‘보통국가론’은 전범국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2018년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도 수평적 한일관계나 세계적인 인권가치 변화가 배경이라 볼 수 있다.
북한 비핵화보다 남북관계를 중시하던 한국의 대북관은 윤석열 정부 등장과 함께 일본과 일치하게 됐다. 상징적 지점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두고 달라진 한국의 태도다. 일본에 간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협력과 지지”를 강조했다. 통일부 장관의 방일 자체가 18년 만이다. 일본에서 이 문제는 정권의 사활이 걸린 이슈다. 1970~80년대 일본인들이 행방불명됐고 북한 공작원의 증언이 이어졌다. 2002년 평양 북일정상회담 때 김정일은 고이즈미에게 처음으로 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때 5명이 24년 만에 일본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일본은 납치자 17명 중 12명을 아직 문제 삼고 있다. 납치자 가족이 고령화되는 가운데 하루라도 빨리 해결되길 호소하고 있다. 일제강점에 대한 대일청구권이 남아있는 북한이 가해자가 되고, 일본이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백주대낮에 영문도 모른 채 납치돼 타국에 억류되는 건 참혹한 인권유린이다. 다만 납치자 이슈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감정은 복잡한 게 사실이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등 일제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과 비교하기 힘든 불편함이 원인일 것이다.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을 잠시 돌아보자. 중국은 남북분단이 지속되는 편이 유리하다.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출현하면 만주에서 국경분쟁이 발생한다는 경계심도 있다. 남북관계 급진전에 소외된 일본의 아베가 트럼프에게 불만을 드러낸 상황이야말로 익히 봐왔다. 윤 대통령은 내달 미국 국빈방문에 이어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 참석한다. 기시다 총리의 지역구인 히로시마는 원폭 투하로 일본 군국주의 광기가 멈춰 서게 된 역사의 현장이다. 일본인은 물론 조선인까지 무고한 인명이 희생됐다. 곳곳에서 평화행사가 열리는 이곳에 가면 일본의 반성은커녕 가해자 미국을 성토하는 교육의 장이란 걸 느끼게 된다. 윤 대통령은 남과 북, 일본의 물고 물리는 거대한 충돌에서 국익을 지킬 수 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대북정책과 대일정책 모두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을까. 엄중한 시험대를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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