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제 시스템이 새로운 긴장에 직면한 이 시기 우리 외교의 올바른 좌표 설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40년간 현장을 지킨 외교전략가의 '실사구시' 시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4월 한·미 정상회담 앞두고 높아지는 기대
워싱턴의 '오피니언 메이커' 설득 강화하고
대통령실 시스템 정비와 초당파 지원도 필요
바야흐로 정상회담의 계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꽉 막혔던 한·일관계에 활로를 마련하는 방문에서 돌아왔다. 이어서 4월에는 12년 만의 미국 국빈 방문이 예정되어 있고, 5월에는 일본에서 개최되는 G-7 회의에 초청을 받았고 그 기회에 한미일 정상회의가 개최될 것이라는 기사를 자주 보게 된다.
4월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 특기할 사항은 이 방문을 통해 윤 대통령이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적인 경제 운용으로부터 우리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기대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2년 이상 계속돼 온 코로나 사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매우 어려운 국제 경제 환경에서 출발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년간 현저해진 또 하나의 도전이 주요국들의 자국 중심주의적 경제 운용이다. 그간 다자주의와 법치주의에 따라 국제 경제의 자유화를 선도해 왔던 미국이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 우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복합위기'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먼저, 2021년 통과된 '인프라법'이다. 미국은 '1933년 바이 아메리칸 법'에 따라 이를 이행하겠다고 한다. 그 이듬해 통과된 '반도체와 과학법'도 문제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이 법에 따른 보조금을 신청하기 위한 조건을 발표했는데, 경영권과 영업 비밀 노출, 기술 정보 노출 등 경영 본질 침해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한다. '인플레감축법'은 아시아와 유럽 동맹국들의 전기차가 미국 시장에 들어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미국 경제에도 부담이다. 인프라 건설업자들의 90%는 '바이 아메리칸 법'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법의 지배'를 강조해 온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대원칙인 무차별 원칙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경제 정책을 운용한다는 것도 문제다. 법의 지배를 무시하면, 힘의 지배를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조치들이 동맹국, 그리고 미국의 초청에 따라 큰 투자를 계획하고 있던 동맹국 기업들에 특히 큰 부담을 지운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은 이해가 된다. 이와 함께 '복합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가능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시기다.
우선, 워싱턴은 정책 결정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오피니언 메이커'들이 매우 중요한 도시다. 미국 의회, 연구소, 언론 등에 적극적인 정책 홍보를 펼쳐야 한다. 이들로부터 지나친 자국 중심주의적 경제 운용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인 메넨데스는 미국이 중요 산업의 미국으로의 복귀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의 전략적 중요성은 이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동맹국들의 의견을 충분히 구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둘째, 주요국들의 자국 중심주의적 경제 운용은 상당 기간 상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응책은 우리나라의 기술과 산업의 '초격차'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에서 정부는 12대 국가전략 기술에 대한 대대적 투자, 그리고 경기 용인에 '글로벌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우리가 겪는 복합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이를 극복하겠다는 국민적 의지, 그리고 국회의 각성과 지원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셋째, 이런 모든 국가적 노력을 조정하는 적절한 조직 정비가 필요하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경제 위기가 국제 정치의 구조적 문제에서 출발한다는 인식에서 윤 정부 출범 초기에 대통령실에 '경제안보비서관'직이 신설되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보다 체계적인 대응 조직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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