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어떤 양형 이유> <법정의 얼굴들>의 저자인 박주영 판사가 세상이란 법정의 경위가 되어 숨죽인 채 엎드린 진실과 정의를 향해 외친다. 일동 기립(All rise)!
학생폭력 이어 교사폭력까지 떠오른 '학폭'
형사사법절차 한계로 찾기 어려운 '탈리오'
화해권고제도 적극 운영도 문제해결 방법
"별명이 '맹물'이었던 그는 누가 보아도 부인할 수 없는 악필이었다. 어느 날 장희수라는 학생이 판서 글씨를 못 알아보겠다며 뒷부분을 읽어달라고 말했다. 순간 유 선생의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앞으로 나오라고 호령을 내렸다. 그는 앞으로 나온 장희수의 두 뺨을 사정없이 갈기기 시작했다. 분이 풀릴 때까지 일방적인 난타전은 그치지 않았다. …10여 년 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장희수를 만난 적이 있다. 20년 만의 만남이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중학 때 생물 선생에게 애매하게 얻어맞았잖았느냐고 얘기를 했더니 그의 반응이 의외로 격렬하여 적잖이 놀랐다. '그 새끼 그 후에 뒈졌는데 참 잘 뒈졌지' 하고 내뱉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타인에게 받은 신체적 모욕이나 폭행을 사람들은 결코 용서하지도 잊어버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그때 절감하였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나의 해방 전후' 중)
소년부 판사 시절, 가끔 소년원이나 학교 행사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강의할 때마다 이 일화를 빠뜨리지 않았다. 자신은 기억조차 없는 일임에도 누군가의 뇌리에서는 평생 '뒈져도 좋을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끔찍할지 생각해 보고, 절대 친구를 괴롭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국가수사본부장의 아들 사건부터 드라마까지, 학교폭력이 새삼 이슈다. 최근엔 교사들의 폭행을 폭로하는 '교폭' 미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종호 선생이 1935년생이니 실로 폭력의 폐해는 세대를 불문한다. 폭력 사건이 터졌을 때 즉시 단죄와 사죄, 용서의 프로세스가 가동돼야 하지만, 전통 형사사법 절차는 법적 처벌에만 치중할 뿐 화해의 기능이 전무하다. 응징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피해자는 견딜 수 없고, 가해자 역시 낙인효과 탓에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적정한 탈리오(Talio, 라틴어로 '받은 그대로 되갚아주기')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사건 당사자는 물론 지역사회 주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피해를 회복하고 지역사회를 재통합하는 데 목표를 두는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은 1974년 캐나다에서 처음 등장한 사법이념이다.
우리 형사절차에서는 소년법상 '화해권고제도'가 회복적 사법이 구현된 대표적 사례다. 소년재판 과정에서 판사가 적정사건을 선별하여 회부하면, 법원에서 위촉한 전문가가 갈등을 중재하고, 판사는 그 결과를 참고하여 처분을 내린다. 가해 소년과 피해 소년은 물론 보호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지하게 대화하고 손상된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치유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피해 소년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안전하게 생활하는 데 도움을 주고, 가해 소년 역시 자신의 행동을 즉각 반성하고 용서받을 기회를 얻는다. 실제 화해권고기일을 지켜보면, 불과 서너 시간의 허심탄회한 대화만으로도 아이들은 눈물 흘리며 사과하고, 기꺼이 용서한다.
이런 형태의 피해자·가해자 대화모임은, 마오리 부족의 전통을 본떠 만든 뉴질랜드의 가족집단협의회(Family Group Conference, FGC)에 기원을 두고 있다. FGC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이나 상담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절차인데, 뉴질랜드에서는 중대 폭력범죄를 제외한 모든 소년사건이 FGC로 회부되며, 놀랍게도 제도 도입 이후 판사들의 업무가 대폭 줄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아직 화해권고제도나 회복적 사법이념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여러 대책이 거론되지만, 핵심은 시기와 절차에 있다. 지연된 정의가 정의 아니듯, 지연된 사죄도 사죄가 아니다. 적시에 풀지 않으면 시간의 2차 가해를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다. 폭력에 있어서만큼은 세월은 약이 아니라 맹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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