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3연임 속 나온 사우디-이란 관계 복원
중동 정세 변화와 중국 역할 부상에 따른 결과
이란-UAE 화해 등 지역 정치질서 재편 가능성
중국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던 지난 10일, 중동에서 패권 다툼을 벌여온 강대국인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 관계 복원이라는 베이징발 깜짝 발표가 나왔다. 양국 외교 관계가 단절된 건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우디 정부가 시아파 성직자 셰이크 니므르 알 니므르를 처형한 것에 반발해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이 공격당하고 말았다. 이후 단절된 양국 관계는 예멘 내전을 거치며 더 나빠졌다. 2019년 사우디 유전 시설에 대한 무인기 피습 사건 배후로 이란이 지목되면서 양국 갈등은 고조되었다.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물밑 접촉은 이어져 왔다. 양국은 2021년 4월 이후 머리를 맞대고 화해 방안을 모색했다. 이런 점에서 16~17일 모리타니아에서 열린 이슬람협력기구(OIC)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사우디의 파이잘 빈 파르한 외무장관은 바그다드, 무스카트, 베이징에서 2년 이상 대화가 지속되어 왔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화해 가능성을 두고 회의적 시각이 팽배했다. 작년 11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 내 증가하는 반정부 시위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란의 사우디 공격이 임박했다며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전격적인 합의에 도달한 배경에는 중동에서 떠오르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라는 평가이다. 중국은 첨예한 중동 갈등의 중재자가 되기 위해 오래 준비해 왔다. 베이징은 워싱턴이 네편 내편 나눠 갈등과 분열을 양산해 왔다고 비판하면서 공정하고 효율적인 중재를 수행하기 위해 2002년 중동 특사 직위를 신설했다.
중국의 최대 강점은 중동 대부분 국가와 우호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위해 필요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이스라엘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 이란 양국 모두와 공고한 협력을 다져왔다. 작년 12월 시진핑 주석이 사우디 리야드를 방문했을 뿐 아니라 올해 2월 이란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베이징을 국빈 방문했다. 정상 간의 만남 속에서 갈등 해결을 위한 접점 찾기가 병행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외에도 사우디와 이란은 저마다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란은 미국·서방과의 핵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경제난에 반정부 시위를 겪으며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이 가중되었다. 이란의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예전 같지 않은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역내 갈등 요인을 줄이며 독자적 외교 노선을 선호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사우디와 이란은 갈등 속에서 때로는 협력을 도모해 왔다. 1990~1991년 제1차 걸프 전쟁으로 이라크가 걸프 지역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하자 1991년 양국은 외교 관계를 재개했다. 1997년 사우디 압둘라 왕세제의 이란 방문은 양국 우호 관계를 상징하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9·11 테러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 중동 정세의 변화 속에서 양국은 다시 갈등을 빚어야 했다.
앞으로 사우디-이란 합의가 얼마나 견고하게 지속될 것인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예멘 내전에 개입한 이란이 후티 반군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하고, 유엔 주도로 진행 중인 휴전 협정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는 양국 관계를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여기에 사우디를 따라 아랍에미리트(UAE)와 이란이 화해할 것인지도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된다. UAE의 타흐눈 빈 자이드 국가안보보좌관은 16일 아부다비를 방문한 이란의 알리 샴카니 최고국가안보회의(NSC) 의장과 만나 "아부다비와 테헤란의 형제 관계로의 발전은 아랍에미리트의 최우선 사항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역내 패권 다툼을 벌여온 사우디-이란의 극적인 화해 이후 중동 정치질서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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