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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에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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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할 때 항상, 내비앱을 켠다. 앱은 오토바이로 갈 최적의 경로와 예상 도착시간을 알려주는데, 안내 시간보다 2~3분 일찍 도착하는 걸 목표로 주행한다. 5분 이상 단축하려면 난폭운전을 해야 하고, 내비 시간대로 움직였다간 배달이 늦어진 이유를 묻는 배달앱의 메시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정반대의 질문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앱에 표시되지 않는다. 시각장애인이 이동할 때, 발달장애 아동과 보호자가 이동할 때, 보행보조기를 끄는 노인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소요되는 예상시간은 내비앱 길찾기 옵션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고 고민해보지 않은 시간을 알고리즘이 계산할 리 없다. 이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면 '왜 이리 빨리 가려고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불평등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정신없이 바쁜 비장애인들을 붙잡고 '같이 가자' 했다. 전장연은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 노동할 권리, 공부할 권리, 자립적으로 살아갈 권리를 위해 정부가 예산을 배정하라고 요구하며 지하철 탑승을 했다. 그러자 3월 17일 경찰이 박경석 대표를 체포했다. '체포'라는 말이 어색하다. 박경석 대표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로 지하철 철로를 점거했을 당시 장애인 인구의 70.5%가 한 달에 5번도 외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2020년에는 장애인 인구의 12.9%가 월 1~3회 외출하고, 8.8%는 전혀 외출하지 않는다. 장애인들은 이미 구금되어 있다. 갇혀 있는 사람을 또 어디에 가둔다는 말인가? 우리 헌법 제12조 ①항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법을 어기고 있는 건 누구인가? 박경석 대표는 체포 직전 모형 철창에 들어가 '도망갈 수단도 없습니다'라고 외쳤다. 비장애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철창 속에 갇힌 장애인의 존재를 꺼내어 보여준 셈이다. 체포의 순간이 해방을 위한 투쟁의 순간이 됐다.
2008년 박경석 대표를 초청해 강연을 개최한 적이 있다. 50여 명의 학생 앞에서 2001년 지하철 철로 점거 영상과 2004년 마포대교 점거 영상을 틀었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대표님이 농담을 던지고 노래를 불렀지만 무거운 공기는 바뀌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점거가 아닌 지하철 탑승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장애인의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검색했더니 22년 이상 소요된다고 뜬다면 대부분은 시작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20년을 넘게 외쳐도 바뀌지 않는 사회 현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그러니깐 너도 '참고 살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함께 살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박경석은 이를 '연대'라고 부른다. 박경석과 전장연은 '22년을 외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봐주십시오'라고 호소한다. 22년의 세월도 연대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꺾지 못한 것이다. 연대를 노래하는 사람을 가둘 수 없다. 노래는 퍼져 나가고 누군가는 호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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