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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돌 대부 ‘쟈니’의 소년 성폭력, 사후에도 쉬쉬하는 이유

입력
2023.03.19 18:1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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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다큐멘터리 통해 생전 성폭력 재조명
"일본 언론 취재 응하지 않고 보도도 안 해"
방송 출연 등 무기로 부정적 언론보도 막아

지난 2019년 7월 10일 도쿄 시내의 한 전광판에 '일본 아이돌의 대부' 쟈니 기타가와가 전날 사망했다는 뉴스가 흐르고 있다. 교도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19년 7월 10일 도쿄 시내의 한 전광판에 '일본 아이돌의 대부' 쟈니 기타가와가 전날 사망했다는 뉴스가 흐르고 있다. 교도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취재 과정에서 이렇게까지 높은 ‘침묵의 벽’에 부딪힐 줄 몰랐다.”

‘일본 아이돌의 대부’라 불리는 쟈니 기타가와(1931~2019)의 생전 성폭력 의혹을 다룬 영국 BBC방송 다큐멘터리 ‘포식자: J-POP의 비밀 스캔들’에 출연한 기자 모빈 아자르가 한 말이다. 아자르와 프로듀서 메구미 인만은 다큐멘터리가 일본에서 방송되기 하루 전인 이달 17일 일본 외신기자협회와 화상 기자회견을 가졌다.

쟈니가 설립한 ‘쟈니스 사무소’는 일본 남자 아이돌을 육성하는 대형 기획사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린 SMAP, 아라시 등 수많은 남자 아이돌이 쟈니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쟈니는 괴물이었다.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기획사를 찾아온 소년들에게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BBC 다큐멘터리엔 아이돌 지망생일 때 쟈니에게 성 학대를 당했다는 피해자 4명의 증언이 나온다.

1999년 슈칸분슌이 이미 폭로... 일본 언론은 침묵

쟈니의 소아성애 행각이 폭로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99년 10월 주간지 슈칸분슌은 ‘쟈니 기타가와, 간사이의 소년들을 호텔에 불러들인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쟈니스 사무소는 명예훼손 소송을 냈는데, 법정 공방 과정에서 피해자의 증언이 나왔다. 항소심은 쟈니의 성폭력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일본의 지상파 방송과 유력 신문들은 물론이고 연예계 스캔들 보도로 먹고사는 주간지들조차 쟈니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종종 벌어진다. BBC도 1964년부터 2006년까지 음악 방송을 진행한 지미 새빌의 성범죄를 은폐했던 사실이 드러나 지탄받은 적이 있다. 새빌이 2011년 사망한 후에야 그가 방송국 스태프, 미성년자 등을 유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묘비가 철거되고 명예박사 학위를 박탈당하는 등 수모를 겪었다.

“쟈니는 죽은 후에도 보호받고 있다”고 아자르는 지적했다. 아자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일본 공영방송, 민영방송, 주요 일간지 등에 취재를 요구했지만 “완전히 무시되거나 정중하게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방송사, 출판사, 신문사까지 침묵... 연예인 출연이 무기

'일본 아이돌의 대부' 쟈니 기타가와의 생전 성폭력 의혹을 다룬 영국 BBC 다큐멘터리 ‘포식자: J-POP의 비밀 스캔들’ 홍보 사진. BBC 홈페이지 캡처

'일본 아이돌의 대부' 쟈니 기타가와의 생전 성폭력 의혹을 다룬 영국 BBC 다큐멘터리 ‘포식자: J-POP의 비밀 스캔들’ 홍보 사진. BBC 홈페이지 캡처

일본 언론은 왜 침묵할까. 1981년 4월 일본 최대 출판사 고단샤가 발간한 잡지 ‘슈칸겐다이’에 쟈니의 악행을 폭로하는 기사를 썼던 저널리스트 모토키 마사히코가 최근 쓴 글이 단초를 제공한다. 취재 당시 쟈니스 사무소는 “앞으로 고단샤 계열 잡지는 우리 기획사 출신 연예인을 다루지 못한다”고 통보했다. 고단샤는 이에 굴복하고 모토키를 좌천시켰다. 모토키는 "당시 소년소녀 잡지나 여성 잡지엔 아이돌을 내보내야 팔렸는데, 쟈니스는 그 약점을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주요 일간지까지 침묵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토키는 일본의 대형 신문사들이 지상파TV 방송국을 거느린 ‘신문·방송 겸영’ 체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닛폰텔레비전(닛테레)을, 아사히신문은 TV아사히를, 마이니치신문은 TBS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TV도쿄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모토키는 “쟈니스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소속 연예인이 계열 방송국에 출연하지 않을 것을 걱정해 보도를 주저했을 것”이라고 했다.

아자르와 인만의 기자회견 이후에도 일본 언론은 입을 열지 않았다. 쟈니 사건을 보도한 언론은 변호사닷컴 등 2, 3개에 불과했다. “일본에선 그저 '연예인 스캔들'로 인식할지 몰라도, 이 사건의 본질은 50년 이상 지속된 소년 성학대다”(인만)라는 호소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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