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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 다르고 '얼' 다른 시대도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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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영어 알파벳) R의 공식적인 한글 표기는 그간 '아르'였다. 그러나 대개들 '알'로 발음해서 간극이 있었는데 드디어 올해 1월부터 국립국어원에서 '알'도 함께 인정했다. 로마자 낱자를 한글로 자주 표기하지 않아 별로들 신경을 안 쓰지만 어쨌든 그래도 발음이야 늘 하고 한글로 적을 때도 있으니 표준은 정해야 된다. 이제 'R[알]은/이'냐 'R[아르]는/가'냐를 고민 안 해도 된다. R의 영국 영어 [ɑː] 기준으로는 '알'이든 '아르'든 변칙적인데, '아'는 마치 A 같고 정작 [r]의 소릿값이 없으니, 글자 R의 발음/표기만은 딴 영어 외래어와 다르다.
글자 R의 표기/발음만 기존의 '아르'와 더불어 '알'도 인정한다는 것이고 낱말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즉 여전히 독일어 차용어 '호르몬, 엔도르핀'은 표준어, '홀몬, 엔돌핀'은 비표준어다. 즉 표기상 음절말 r/l은 여전히 구별된다. 기존에 '알'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L(엘)과 구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음절말 r의 '르' 표기는 영어를 제외한 대다수 유럽 언어의 [r/ʁ] 발음을 반영하고 [l]과 구별하려는 것이다. 영어 hormone, endorphin 기준이다라면 '호몬, 엔도핀'일 텐데, 한국식 축약 내지 일본식 외래어의 과잉 수정으로 '홀몬, 엔돌핀'도 통용된다. 일본어에서 옮긴 책들은 예컨대 Bert[베르트]라는 독일 이름이 '벨트'로 과잉 교정되기도 했다. 일본어는 belt[벨트]든 Bert[베르트]든 ベルト[베루토]이다.
글자 이름 자체가 아주 중요하진 않다 보니 딴 언어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W는 독일어, 네덜란드어, 영어, 폴란드어 말고는 자국어 철자로 쓰는 유럽 언어가 드물기에, 로망스어(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등)에서 W는 이름이 두어 개다. 스페인어 W의 명칭은 uve doble[우베 도블레, ‘v 겹침’의 뜻]인데 doble v/u[도블레 베/우]로도 불린다. 독일 자동차 BMW[베엠베]는 이탈리아어 [비엠메부], 터키어 [베메베]처럼 BMV의 독음으로도 불린다. 한국에서 러시아어 KGB[카게베]는 [케이지비]이듯 영어 알파벳처럼 흔히 읽지만 BMW[비엠더블유]를 [베엠베]로, 프랑스어 TGV를 [떼제베, 테제베]로도 읽듯 간혹 원어도 따른다.
한국어는 미국 영어 영향으로 DMZ[디엠제트]를 [디엠지]로, MZ[엠제트]세대를 [엠지]로도 부르지만 그런 것들은 통으로 한 낱말로 치면 된다. Z 자체를 [지]로 부르면 G[지]와 헷갈리므로 Z의 이름으로서 [지]를 표준어로 인정할 필요는 없다. TV[티브이]도 그냥 낱말로 간주해 이제 [티비]라는 비표준어가 많이 통용되나 역시 글자 V는 [브이]로 따로 구별하는 게 합리적이다.
일곱 살배기 내 아들을 비롯해 한국은 1990년대생부터 미국 영어를 여러 경로로 일찍 접해서 R의 한국어 발음이 '알'보다 '얼'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ㅏ는 중설 저모음 [a], ㅓ는 후설 중저모음 [ʌ]인데 미국 영어 [ɑɹ]의 [ɑ]는 후설 저모음이라서 ㅏ와 ㅓ의 중간쯤이고 제트 세대(1997~2012)나 이후 알파 세대는 그걸 ㅓ에 더 가깝게도 받아들인다. 이들이 완전한 기성세대가 되는 삼사십 년 뒤에 베타, 감마 세대까지 나오면 '얼'도 함께 인정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 외에 '(아르 다르고) 알 다르고 얼 다르다'도 새로 생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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