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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줄어드는데, 이들만 '역주행'··· 황혼 새 출발에 이유 있다

입력
2023.03.19 15:00
수정
2023.03.19 15:0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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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4세 혼인 3.8%↓, 60세 이상 6.3%↑
①고령화 ②이혼 증가로 황혼 재혼 늘어
자녀와 새 배우자의 상속 분쟁 등 그림자도

기사와 직접 연관이 없는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기사와 직접 연관이 없는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 대기업 임원을 지낸 중소기업 사장 1954년생 김모씨. 겉보기에 남부럽지 않은 삶이나, 두 번의 아픔을 겪었다. 20년 넘게 살던 아내와 종교 문제로 헤어지고, 두 번째 결혼은 성격 차이로 2년 만에 깨졌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 66세였던 2019년 네 살 어린 여성과 세 번째 부부의 연을 맺었다. 김씨의 자녀·형제들은 "이제야 잘 맞는 배우자를 찾았다"며 새 출발을 응원하고 있다.

# 1941년생 박모씨는 50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아내를 2017년 여의었다. 쓸쓸해하던 그는 지인 추천으로 결혼중개업체를 찾았다. 박씨는 남편과 사별한 열 살 연하 여성과 모든 게 잘 통해 6개월 교제 후 79세 때인 2021년 재혼했다. 이 노부부는 젊게 살고자 서로를 '허니', '오빠'라고 부르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100세 시대에, 유독 느는 노년층 결혼

'결혼은 선택'이라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주저앉고 있는 혼인 건수. 하지만 유독 증가세인 연령대가 있다. 바로 60세 이상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젊은 노년층으로 여겨지는 60, 70대 중심으로 '황혼 재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적령기인 25~34세 혼인 건수는 남자 기준 10만5,975건으로 1년 전과 비교해 3.8%(4,276건) 감소했다. 전년 대비 0.4% 줄어든 전체 혼인 건수보다 큰 감소폭이다. 반면 60세 이상 남성의 혼인 건수는 7,221건으로 전년보다 6.3%(431건) 늘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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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열을 혼인 건수 감소가 본격화한 2000년 전후로 넓혀 보면 재혼이 대다수인 60세 이상의 역주행은 더욱 눈에 띈다. 모든 연령대에서 혼인 건수가 줄고 있는 가운데, 60세 이상만 홀로 증가세다. 예컨대 지난해 전체 혼인 건수는 정점을 찍은 1996년(43만4,911건)과 비교하면 반 토막 났다. 하지만 같은 기간 60세 이상 남성의 혼인 건수는 3.4배 늘었다. 60세 이상 여성 역시 남성과 비슷한 추세다.

황혼 재혼, 직업 대신 '이것' 따진다

황혼 재혼이 늘어난 주 요인은 고령화, 이혼 증가 등이다. 황혼 재혼 주연령대인 60, 70대 인구는 2002년 501만 명에서 2022년 1,098만 명으로 2배 넘게 불었다. 또 1990년대 초만 해도 5만 건 안팎이었던 연 이혼 건수는 2003년 16만6,000건까지 치솟는 등 2000년대 들어 10만 건을 웃돌고 있다. 특히 60세 이상의 황혼 이혼 건수는 2003년 6,067건에서 지난해 1만9,366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고령 재혼 시장이 커진 셈이다.

임일영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결혼을 늦게 하면서 이혼 연령이 늦어지는 면도 재혼 연령대를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재혼전문 중개업체 '온리유'의 손동규 대표는 "20년 전엔 50대만 돼도 재혼을 포기했지만 신체·정신적으로 건강한 요즘 노년층은 삼혼까지 나선다"며 "직업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청년층과 달리 노년층은 건강, 자녀 관계, 보유 재산 등을 관심 있게 본다"고 설명했다.

황혼 재혼이 빛만 있는 건 아니다. 노년층 재혼은 재력가가 상당수다 보니 자녀와 새 배우자 간 상속 분쟁을 겪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황혼 재혼은 평균수명 증가, 전통적인 가족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문화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늘 수밖에 없다"며 "재혼 전 재산 일부를 자녀에게 증여하거나 재산 분할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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