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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재발 막겠다며… 길에 '빨간 콘크리트' 붓는 마포구

입력
2023.03.18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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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 교부 예산으로 차도에 미끄럼 방지 포장
정작 보도 제외… 미끄럼계수 측정도 안 해
공원·주차장 없애는데 주민 의견 수렴 부족

1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걷고싶은거리 차도에 붉은색 아스팔트콘크리트를 덮는 도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독자 제공

1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걷고싶은거리 차도에 붉은색 아스팔트콘크리트를 덮는 도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독자 제공

서울 마포구가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 예산으로 홍대 문화예술관광특구 일대에 ‘레드로드’ 조성 사업을 시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연남동 경의선숲길부터 서교동 홍대 걷고싶은거리를 거쳐 당인동 당인리발전소까지 2㎞ 구간을 붉은색 아스팔트콘크리트(아스콘)로 포장해 마포구(區)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단 구상이지만, 목적에 맞지 않는 예산 사용이란 지적이 나온다.

1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마포구는 이달 초부터 레드로드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대상 거리의 가운데는 보도이고 양옆은 차도이며, 이 중 차도를 미끄럼 방지용 붉은 아스콘으로 덮는 게 사업 내용이다. 마포구는 레드로드를 깔기 위해 홍대의 대표적인 복합문화예술공간인 KT&G 상상마당 인근에 있던 공원과 공영주차장도 없앴다.

마포구 서교동 홍대 걷고싶은거리 차도에 붉은색 아스팔트콘크리트를 덮는 도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독자 제공

마포구 서교동 홍대 걷고싶은거리 차도에 붉은색 아스팔트콘크리트를 덮는 도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독자 제공

문제는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예산이 이 사업에 쓰였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다중인파 운집지역 골목길의 잠재적 위험요소 해소 용도로 25개 자치구에 4억 원씩 총 100억 원의 특별조정교부금을 내렸다. 마포구는 이 예산을 레드로드에 투입했다.

마포구는 인파가 모이는 곳에 미끄럼 방지 작업을 하는 것이니, 예산 목적과 무관치 않단 입장이다. 다만, 여기에 열정과 젊음, 청춘 등의 의미를 담아 레드로드라는 상징성을 부여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보도가 아닌 차도에 미끄럼 방지 포장을 하는 게 인파 사고 방지와 관련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마포구는 보도의 미끄럼 마찰계수는 측정하지 않았으며, 특별한 안전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구청 관계자는 “이곳은 주말이면 차 없는 거리가 된다”며 “이를 평일로 확대하는 방향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1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공영주차장 자리에 도로 평탄화 작업이 실시되고 있다. 김도형 기자

1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공영주차장 자리에 도로 평탄화 작업이 실시되고 있다. 김도형 기자

압사 사고 예방책 가운데 미끄럼 방지는 부차적이란 의견도 있다. 이태원 참사 원인을 자문했던 박준영 금오공대 교수는 “참사 원인이 된 크라우드 서지(Crowd Surge‧군중 밀려듦) 현상은 도로 설계보다는 인파 관리의 문제”라며 “대규모 행사에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밀집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포구의 예산 집행은 강남역이나 건대입구역, 신촌 등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거리를 관할로 둔 다른 구청과도 비교된다. 강남구는 서울시 예산을 보도의 파인 곳 정비 등 보수에 먼저 집행한 뒤, 다중인파 운집을 감시하기 위한 폐쇄회로(CC)TV 확충에 쓸 계획이다. 미끄럼 방지 도포 여부는 골목 경사도와 미끄럼 마찰계수 등을 측정한 뒤 필요성을 따져볼 방침이다.

거주민 불만에 구청장 "일부 주민만 반대"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인근 공원 나무가 베여 옮겨지고 있다. 독자 제공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인근 공원 나무가 베여 옮겨지고 있다. 독자 제공

일부 주민들도 마포구가 별다른 의견 수렴도 없이 레드로드 조성에 나섰다며 불만을 나타낸다. 레드로드 구간의 중간 지점인 상상마당을 기준으로 북쪽은 술집 등이 많은 번화가이고, 남쪽은 카페 등 상업지역과 주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남쪽 주민들은 레드로드를 통해 거주지까지 유흥시설이 늘어날까 우려하고 있다. 이곳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다는 백모(53)씨는 “멀쩡한 공원과 주차장을 없애서 유흥가를 만들겠단 것 아니냐”며 “주민 의견은 하나도 안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경점 대표 박모(32)씨도 “별다른 대책 없이 갑자기 주차장이 사라지니 주차 다툼이 부쩍 늘었다”고 토로했다. 주민 200여 명은 협의체를 구성해 법적 대응도 고려 중이다.

이 사업이 박강수 마포구청장의 치적쌓기용처럼 비친다는 비판도 나온다. 차해영 더불어민주당 마포구 의원은 “2021년 말 관광특구 지정 후 박 구청장이 취임(작년 7월)했다”며 “재임 기간에 상징물을 하나 남기고 싶은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박 구청장은 그러나 치적쌓기란 시선은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주민은 일부이고 대다수 상인은 환영한다”고 반박했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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