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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손자가 외친 “법의 심판”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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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부탁드립니다.”
“법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인 전우원(27)씨가 ‘범죄행각을 밝힙니다’라는 유튜브 영상에서 반복한 말이다. 그는 지난 13일부터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족들이 ‘검은 돈’으로 누리는 호화생활과 사업, 주변인들의 마약 투약과 성범죄를 상세히 폭로했다.
폭로 이유는 ‘법의 심판’. 그는 가족 및 지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처벌을 받아야 하며, 자신 역시 처벌을 받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결국 폭로 5일째, 그는 유튜브 라이브방송 도중 "방송에서 마약을 먹어야지 검사를 받고 형을 산다"고 말한 뒤 마약으로 추정되는 약물을 투약했다. 자수를 한다는 거였다. 그는 투약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고, 그의 폭로도 17일 막을 내렸다.
그가 폭로한 '검은 돈'과 각종 범죄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될까.
전우원씨가 말하는 ‘검은 돈’은 전두환씨가 대통령 시절 축적한 비자금을 뜻한다. 대통령 재임기간(1980~88년) 그가 거둬들인 돈은 9,500억 원(1997년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 정치자금, 선거자금 등의 명목으로 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돈이다. 내란죄, 뇌물수수 등으로 구속된 그는 1997년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지만 당시 낸 돈은 300억원 정도에 불과했다. 이미 대부분의 돈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전우원씨는 보안업체 웨어밸리 등을 비자금 세탁 창구로 지목했다. 그는 16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전두환이 경호원들에게 지급한 돈으로 회사가 설립됐고, 비상장 주식 지분을 저와 제 친형이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지인과 경호원 등 주변인에게 돈을 뿌리고, 여기저기에 바지 사장을 앉혔기 때문에 비자금의 전모는 지금도 드러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아직까지도 내지 않은 추징금 규모는 922억 원.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며 버티던 전두환 측은 2013년 검찰이 전담팀을 꾸려 서울 연희동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전방위로 압박하자 “반드시 완납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 소송을 제기하며 재산 지키기에 나섰고, 정부는 1,000억원 정도를 환수하는 데 그쳤다. 결국 2021년 전씨가 사망하면서 남은 돈은 받을 방법이 없게 됐다. 현행법상 당사자가 사망하면 추징도 중단된다.
전우원씨의 폭로로 전두환의 셋째 아들 전재만씨가 미국에서 운영하는 시가 1,000억 원대 와이너리(와인 양조장) 등 막대한 부와 호화로운 생활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지만 추징할 방법은 없다. 추징금 환수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의 관계자는 “현행법과 대법원 판례상 추가적인 추징 절차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추징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우원씨가 폭로한 주변인의 마약 투약, 성범죄 등은 처벌이 가능할까.
경찰은 “폭로만으로 수사하긴 어렵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 경찰청 관계자는 “인터넷으로 폭로만 나오고 정식으로 고소, 고발된 사안은 아니어서 당장 수사에 착수한 것은 없다”며 “(수사 검토 여부도)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또 다른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려면 제보의 신빙성과 구체성이 있어야 하는데 제보자가 외국에 있고 만날 가능성도 희박해서 현재는 지켜보고 있다”며 “아직 수사에 착수할 만한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검찰 역시 "(폭로 내용 중)범죄가 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힌 채 관망하는 분위기다.
다만 국내 정부기관 등에서 일하는 지인들에 대한 조사는 진행될 여지가 있다. 전우원씨가 자신에게 마약 투약을 권했다고 지목한 지인과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지목한 지인은 현재 각각 국방부와 공군부대에 근무 중인데, 국방부는 “사실 확인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까지 제기된 것은 한 개인의 일방적 주장이며 허위나 심각한 명예훼손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내사나 감사를 시작한 단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아직까진 추징금 환수도, 마약투약 성범죄 등에 대한 법적 처벌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관련법상 한계가 분명한 데다 수사 담당 기관들도 관망하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우원씨의 폭로를 잊혀 가는 전두환 문제를 공론화하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홍길 5·18기록관 학예연구사는 “폭로 내용의 사실관계를 밝히려면 특별 부서를 만들어 집요하게 추적하고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비자금 등도 밝혀야 하는데 정치권과 검찰이 그런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폭로가 1회성 퍼포먼스로 끝날까 걱정되지만, 여론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전두환 문제를) 공론화시킬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앙재혁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학살자가 부당하게 잡은 정권으로 취득한 재산으로 호화롭게 사는 모습을 보며 유가족들은 울분을 토한다”며 “(폭로를 계기로) 재산 축적 과정 등 특별법을 만들어 자세히 밝히고, 그동안 제대로 되지 않은 추징금 환수도 강력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을 바꾸면 추징금을 환수하는 길이 열린다. 국회에 계류된 '전두환 추징3법'은 당사자가 사망해도 상속재산을 추징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2020년 발의된 이 법안은 3년 가까이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2021년 전두환씨가 사망하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 점점 옅어진 탓이다.
이 법을 발의한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추징3법 중)형법과 형사소송법은 법사위 소위에 한 차례 상정된 바 있으나 법원행정처와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여전히 계류 중이고,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은 단 한 차례의 심사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회 법사위는 전두환 일가가 사용하고 있는 ‘검은 돈’을 환수하기 위해 이 법을 신속히 심사,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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