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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을 당황케 한 '클린스만 리더십'

입력
2023.03.1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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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에 오른 위르겐 클린스만 신임 감독이 9일 경기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에 오른 위르겐 클린스만 신임 감독이 9일 경기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무례할 정도로 거친 질문들이 쏟아졌다. 마치 죄를 지은 이가 잘못을 사죄하러 나온 자리 같았다. 그것도 파란 눈의 외국인이 말이다. 세계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독일 축구 전설' 위르겐 클린스만(59)은 그렇게 국내 언론과 첫 상견례를 가졌다.

국내 언론은 지난 9일 클린스만 감독을 단두대에 세우듯 몰아붙였다. 소위 날을 잡고 벼르던 터였다. 앞서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한 마이클 뮐러 대표팀 전력강화위원장의 '고구마 기자회견' 탓이 컸다. 대표팀 감독 선임의 총괄을 맡은 그는 "축구협회와 클린스만 간 계약조건을 잘 알지 못한다"는 황당한 답변과 함께 '동문서답'만 늘어놨다. 결국 축구협회는 어떤 경로로 접촉해 클린스만 감독을 최종 결정했는지, 클린스만 감독만의 강점이 무엇인지 등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그러니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국내 언론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그의 한국 감독 부임설에 외신들은 '전술이 없는 감독' '재택근무 논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임표명' 등 과거 행적들을 들추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새 감독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와 걱정이 더 깊어졌다. 축구협회의 '이상한' 기자회견은 이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의 입에 이목이 집중된 순간, 그는 의외의 일격으로 취재 기자들을 당황케 했다. 너무나 솔직하고 소탈하며 간단명료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동안 접하지 못한 수준 높은 언변에 기자들은 반기를 들지 못했다. 권위의식 없는 '내려놓음'이 뾰족하게 벼르던 언론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이를테면 베를린 헤르타 감독 시절 70여 일 만에 SNS로 사임 표명했던 일에 대해 "나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신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까지 했다. 한때 리오넬 메시(파리생제르맹)급 스타였던 그가 잘못을 인정하다니. 부정적인 여론이 있다는 비판에는 "감독이란 자리는 경기 결과로 평가받는다. 믿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명쾌한 발언도 했다. 축구협회에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순간이었다.

소통을 중시한다는 그의 리더십이 어렴풋이 엿보였다. 그는 기자회견 때나 12일 FC서울과 울산 경기 직후, 15일 '2023 지도자 콘퍼런스' 등 언론에 나설 때마다 "빨리 대표팀 선수들을 만나 경험을 전수해 주고 싶다" "조언을 통해 자신감을 주고 싶다" "선수들과 대화를 통해 역할이나 동기부여를 주고 싶다" "(선수들과) 서로 배워갔으면 한다. 나도 인생에서 굴곡을 겪었기에 조언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등 소통을 강조했다. 언론과도 마찬가지다. 피하기보다 정면돌파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며 오해를 없애는 쪽을 택했다.

물론 클린스만 감독이 말한 대로 감독은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오는 24일 콜롬비아, 28일 우루과이와의 2연전이 끝나면 평가는 갈릴 것이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건 우리네 리더들에겐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 보여서다. 했던 일을 하지 않았다고 우기고, 알면서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도 모자라 변명하고 남 탓하는 '한국형 리더십'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공격적으로 맞서는 상대에 미소로 대응하는 여유로움과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간결한 솔직함까지. 앞으로 4년여간 클린스만 리더십이 성공하기를 바라본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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