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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도 집주인도 비명"... 갭투자는 어쩌다 갭거지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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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모씨는 전세 계약이 끝나는 4월 집을 비우겠다고 집주인에게 지난해 12월 통보했지만, 아직까지 집을 보러 온 이가 없다. 집주인은 "집이 안 팔리면 어쩔 도리가 없다"고만 했다. 법대로 하겠다며 변호사를 찾은 황씨는 낙담했다. 전세금 반환 소송을 한 뒤 강제경매까지 최소 반년은 걸린다는 것이다.
"본인 돈 4,000만 원으로 전세 끼고 3억5,000만 원짜리 집을 산 갭거지가 그렇게 주인 행세를 했나 싶어 화가 솟구쳐요."
#2.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지난해 6월 서울의 9억 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최고 13억 원까지 갔던 물건이 급급매로 나온 거라는 중개업자 말에 기존 전세 계약(보증금 7억 원)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매입했다. 부족한 돈 2억 원은 2금융권 대출까지 끌어와 메웠다. 올 들어 집값은 8억 원, 전셋값은 4억 원 후반까지 밀려도 버텼지만, 곧 나가겠다는 세입자 얘기에 그는 무너졌다.
"당장 전세금을 돌려주려면 2억 원은 있어야 하는데, 일단 고금리 대출이라도 받아 이자 내며 버틸지, 손해 보고 집을 팔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주택 매맷값과 전셋값이 동반 급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전세 끼고 집을 산 일명 '갭(gap)투자자'가 부동산시장 리스크의 핵으로 떠올랐다. 갭투자 중심으로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자, 인터넷엔 '갭거지'란 단어가 유행처럼 나돌 정도다. 업계와 학계에선 갭투자 리스크가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거란 경고가 쏟아진다. 정부도 발걸음이 빨라졌다.
갭투자는 전셋값과 매맷값 차이가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사는 투자법으로 크게 세 가지다. ①금융권 대출(주택담보·신용 등)을 받아 집을 산 뒤 전세 임대 ②매매 계약(집값 10%) 체결 뒤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매매·전세 동시진행 ③기존 전세금을 승계해 집을 사는 방식 등이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월 500만 원 남짓 버는 일반 직장인도 9억 원짜리 고가 주택을 살 수 있다.
갭투자의 지상 목표는 집값 상승. 세입자가 건넨 전세보증금은 제로금리 대출(이자 0%)이나 마찬가지라 전셋값을 높일수록 조달비용이 낮아진다. 집값이 오르는 만큼 전부 수익으로 잡힌다. 따라서 집값 차익만 있다면 집을 산 뒤 1, 2개월 안에 집을 파는 극단적 투자도 가능하다. 전셋값만 올라도 충분하다. 그만큼 제로금리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셈이기 때문이다. 결국 집값이 꾸준히 오를 거라는 기대감 하나에만 베팅하는 고위험 투자법이 바로 갭투자다.
반대로 집값 또는 전셋값이 내려가면 벼랑에 몰린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전세제도 자체가 이미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불완전한 제도인데, 갭투자는 전세금 미반환 위험을 극대화한다"고 지적했다.
갭투자 규모를 정확히 나타내는 국가 통계는 없다. 다만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셋값이 뛰기 시작한 2010년부터 갭투자가 번져 2017년 전후 서울·수도권 집값 상승 바람을 타고 전국적 광풍으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전후 갭투자란 용어가 생겨났다.
한국일보가 빅데이터 전문회사 데이터앤리서치에 의뢰해 온라인에서 갭투자를 키워드로 작성된 기사· 블로그 포스팅 등의 정보량을 분석했더니, 2017년(7만3,000건)을 시작으로 아파트값이 폭등한 2020년(19만3,000건)과 2021년(25만2,040건) 갭투자에 대한 대중 관심도가 2, 3배 넘게 급증했고 지난해엔 36만3,210건 수준까지 뛰었다.
이 시기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55%(KB시세) 올라 집값 상승률(20%)을 크게 웃돌았다. 전세대출과 전세보증 상품이 처음 출시되며 전세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이 덕분에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2010년 1월 54%에서 2015년 12월 74%로 무려 20%포인트 뛰었다. 서민을 위한 전세 지원 정책이 갭투자 기반이 된 것이다.
전국 집값의 바로미터인 서울 아파트값이 2014년 상승으로 돌아서며 꾸준히 오름세를 이어가자 이를 기회 삼은 갭투자가 본격 유행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규제 강화에 따른 공급 감소 우려와 기준금리(0.25%) 역대 최저 등의 요인이 맞물리면서 2020년부터 집값 상승이 전국으로 번지자 그야말로 갭투자 광풍이 불었다. 2020년 7월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으로 2020~2021년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무려 18%나 뛴 게 한몫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이 시기 집을 가져야 한다는 사회적 심리가 맞물리며 젊은이 중심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열풍이 불며 너도나도 갭투자에 뛰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전국 아파트값은 6.4%, 전셋값은 9% 하락(부동산원 기준 각 -11.8%·-14.7%)했다. 연간 기준 집값·전셋값이 동반 하락한 건 1998년·2004년·2019년 세 번인데, 하락폭은 1998년 이후 역대 두 번째다. 지금까지는 전셋값이 꾸준히 우상향해 그나마 갭투자 리스크가 적었는데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요즘 신규 전셋값이 계약 당시보다 밑도는 역전세 아파트가 쏟아지자, 시장에선 자산이 없어 전세금을 내줄 형편이 못 되는 이른바 '갭거지'가 최대 리스크로 떠올랐다. 우려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세입자가 집주인을 상대로 경매(집합건물)를 신청한 건수는 978건으로 2018년(375건·지지옥션)보다 2.6배 급증했다. 경매 전 단계인 임차권등기 건수도 역대 최대에 이르렀다. 요즘 법무법인엔 전세금 반환 소송을 상담하는 세입자로 넘쳐난다. 법도의 엄정숙 변호사는 "역전세를 당한 세입자 상담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며 "갭투자한 집주인이 다른 자산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고 묻는 유형이 가장 많다"고 했다.
최근 경매로 나온 주택은 90%가 빌라로 추정된다. 하반기부터는 전세금을 못 갚아 경매로 몰린 아파트가 쏟아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박덕배 금융의창 대표는 "임대차 3법 이후 전세금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뛰어든 갭투자자들, 그중에서 20·30대 영끌족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자금조달계획서에 따른 갭투자 비율은 대략 30~40% 선이다. 2020~2021년 주택 거래량은 260만 건으로 이 중 80~104만 건이 갭투자 주택으로 추산된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20대 직장인, 30대 주부 등 계층을 가리지 않고 "전셋값 하락으로 집을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기로에 섰다"는 유형의 상담글이 적지 않다. 국토연구원은 갭투자 리스크가 내년에 정점을 찍을 거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기민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집값 하락이 이어지고, 금리까지 오르면 더는 버티지 못한 갭투자 주택이 시장에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김덕례 실장은 "역전세, 갭투자가 맞물려 시장 쇼크가 온 만큼 정부가 신속히 개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최악의 경우 경매에 나온 주택을 정부가 매입해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주무부처인 국토부도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전세사기 위주로 대응했지만 앞으로의 시장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어떻게 대응할지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갭투자, 독이 든 성배
"세입자도 집주인도 비명"... 갭투자는 어쩌다 갭거지가 됐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1614590005004
"남의 돈으로 부자 되자" 갭투자 지침서, 부메랑 됐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1616510000480
[단독] '전세사기' 극심 강서구, 갭투자도 서울서 가장 많이 몰렸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32116370005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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