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공인의 처신에 대하여

입력
2023.03.1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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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저신다 아던의 메시지

2019년 3월 17일 모스크 총기테러 희생자 추모의 뜰에 꽃을 들고 온 소녀. AP 연합뉴스

2019년 3월 17일 모스크 총기테러 희생자 추모의 뜰에 꽃을 들고 온 소녀. AP 연합뉴스

2019년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두 곳이 한 백인 극우주의자의 연쇄 무차별 총격의 표적이 됐다. 만 3세 소년을 포함해 51명이 숨졌고, 4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희생자 다수가 파키스탄과 인도 등지의 이민자였다. 자타공인 세계에서 가장 관용적인 나라 중 한 곳으로, 군사와 조직·폭력범죄, 사회·정치적 갈등 정도로 평가되는 세계평화지수에서 그해 세계 2위를 차지한 국가에서 빚어진 참극이었다.

범인은 당시 만 28세의 인종주의자 브렌턴 해리슨 태런트(Brenton Harrison Tarrant)였다. 그는 당일 오후 1시 40분께 리카턴(Riccarton)의 알 누르 모스크에 난입, 반자동소총을 난사한 뒤 약 7분 뒤 인근 린우드 이슬람센터에서 그 짓을 반복했다. 그는 애시버튼의 또 다른 모스크로 이동하던 중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그는 헬멧에 장착한 고프로로 총격 장면을 페이스북에 생중계했고 앞서 인종주의 음모론에 기초한 무려 74쪽 분량의 선언문을 작성해 언론사 등에 이메일로 배포했다. 선언문에서 그는 보스니아 무슬림 학살을 긍정하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을 ‘새로운 백인 정체성의 상징’으로 찬양했다. 법원은 그에게 2020년 8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뉴질랜드 최초의, 법이 정한 최대 형량 판결이었다.

노동당 출신 최연소 총리였던 저신다 아던 당시 총리는 3월 15일을 “뉴질랜드의 가장 암울한 날 중 하루”라며 범인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명명하길 거부했다. 2022년 범인의 뒤늦은 항소에 대해 논평하면서도 아던은 “그는 결코 환기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며, 시민들에게 다시 위해를 가하려는 이번 시도에도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에게 아무것도(악명조차) 주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정치인-공인의 말과 태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책임을 아는 드문 정치인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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