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 이권 차지하려는 검투사 경기
정당은 승자완점이면서 국회는 비례제?
정쟁조장·공천권 남용하는 체제 바꿔야
국민의힘 지도부 선거가 끝났다. 대통령 후보라도 뽑는 것처럼 후보들은 죽기 살기로 네거티브를 동원해 싸웠다. 여당 전당대회는 항상 대통령실의 의도가 반영됐지만 이번처럼 공공연하게 작동했던 적은 없었다. 당대표 선거를 죽기 살기로 치르기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당대표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로마시대 검투사처럼 싸우고 언론과 국민은 그것을 보고 즐겼다. 하지만 로마의 검투사들은 모두 죽었고 그것을 즐기던 로마도 망했음을 알아야 한다. 당대표를 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한국 정치의 가장 어두운 장면이다.
당대표라고 뽑아 봤자 얼마 후에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대표를 뽑았더니 정작 그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당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지도부를 구성하는 전당대회가 요란스러운 정당은 공산당, 그리고 사회당 같은 좌파 정당이다. 공산당은 정해진 각본대로 지도부를 뽑고 사회당은 정말로 시끄럽게 뽑는 것이 차이다. 의회주의가 정착된 나라에선 정치가 원내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당 지도부 구성에 있어서도 의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국 보수당과 일본 자민당이 그러했으나, 근래에는 권리당원들의 참여를 허용한다. 영국 노동당은 1990년대부터 소속 의원, 노조 등 지지단체, 그리고 일반 당원의 전당대회 참여율을 3분의 1씩 하도록 했다. 여하튼 의원내각제인 영국과 일본에선 소속 의원들이 당대표 선출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대통령제인 미국에는 당대표라는 것이 없고 전국위원회 의장이 있을 뿐이다. 여당의 경우는 대통령이 의장을 임명한다. 닉슨 대통령이 유엔주재 대사를 지내던 조지 H. W. 부시를 공화당 전국위 의장으로 임명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 정당의 전국위원회는 당 조직을 유지하고 기부금을 모으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미국의 정당 정치는 철저하게 원내 중심이며, 공직선거 후보는 프라이머리를 통해 결정된다.
우리나라 당대표는 공천권을 행사하고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중앙당을 장악하는 등 막강한 이권을 향유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표가 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다. 정당의 원내 지도부는 협상을 지향하지만 당 지도부는 강성 기류를 유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정당을 광적(狂的)으로 지지하는 집단이 정당 지도부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그 같은 강성 지지자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정당 지도부는 득표 순서에 따라 당선된 최고위원들로 구성되는 합의제였다. 말하자면 비례성이 반영되던 지도부였다. 그러나 이제는 당대표를 별도로 뽑아서 그 대표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있다. 당대표 선거는 승자완점(勝者完占) 게임이고 대표는 '제왕'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생각해 볼 점은 사표(死票)를 줄이고 민의를 국회 의석에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면서 중대선거구와 권역별 비례제를 도입하자는 김진표 국회의장의 주장이다. 당 지도부 선출은 승자완점으로 하면서 국회 구성은 비례성을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국회 개혁을 말하기 전에 정당 개혁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뽑은 당 지도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월·수·금 아침마다 최고회의를 한다면서 정쟁(政爭)을 부추기고 선거가 닥쳐오면 공천권을 남용하는 것이 당 지도부가 하는 일이다. 정당구조를 개혁하지 않고 우리 정치가 정상적인 궤도를 찾아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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