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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작품을 투자 목적으로 구입할 때의 원칙

입력
2023.03.12 12:00
수정
2023.03.15 21:47
25면

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브리짓 라일리 작품도 선보인 명원박물관 '비전의 예술가' 전시 사진. 문 사이로 보이는 게 브리짓 라일리 작품이다. 슬리퍼스써밋 제공

브리짓 라일리 작품도 선보인 명원박물관 '비전의 예술가' 전시 사진. 문 사이로 보이는 게 브리짓 라일리 작품이다. 슬리퍼스써밋 제공

작가의 흔적을 충만히 느끼기에 드로잉만 한 게 또 있을까. 19세기까지 화가들은 주로 납 성분이 함유된 흰색 재료로 드로잉했는데, 엑스레이를 통해 보면 이 흰 바탕 '붓놀림'이 드러난다. '펜티멘토'라 불리는 유화의 겉칠이 벗겨지며 밑그림이 보이는 장면도 목도할 수 있다. 두 미술상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사라진 작품 '살바토르 문디'을 진품으로 판단한 것도 이 '펜티멘토' 덕분이었다. 그들은 2005년 뉴올리언스 경매에서 1,175달러에 구입한 뒤 6년간 지원한 끝에 다빈치의 원작임을 증명했다. 스푸마토 기법, 입술 물감의 부서짐 등 다빈치의 특징적 채색법이 드러났다. 그림 속 예수는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개의 손가락을 펴고 있는데, 그 엄지의 위치가 바뀐 것이 위작이 아니라는 판단의 결정적 단서가 됐다. 위작이라면 엄지 위치를 고민하지 않고 따라 그렸을 테니까.

브리짓 라일리 작품(La Lune en Rodage- Carlo Bellolli), 1965. 슬리퍼스써밋 제공

브리짓 라일리 작품(La Lune en Rodage- Carlo Bellolli), 1965. 슬리퍼스써밋 제공

이런 세기의 발견은 흔치 않지만, 유명 작가의 드로잉 작품을 구매할 기회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더불어 1억 원 미만의 금액으로도 세기의 작가가 남긴 드로잉을 구할 수 있다. 나의 첫 작품 구매는 인상파 작가 카밀 피사로의 작은 드로잉이었다. 경매 전 작품 시세를 조사하고 상한선을 정하고 소더비 경매장에 갔다. 그런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매번 나의 손과 함께 올라가는 다른 이의 손이 있었다. 원망스러웠다. 마침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의 눈과 마주쳤고, 그는 더 이상 손을 올리지 않았다. "땅 땅 땅!" 낙찰 후 나와 동시에 손을 들던 그가 내게 다가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저는 카밀 피사로의 증손자예요. 당신의 작품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어요. 당신이라면 이 드로잉을 아끼고 간직할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의 소득을 위해 값을 올려 되팔려는 게 아니라." 작은 드로잉 작품이라도 그 가치와 영향력을 앞으로도 유지하도록 지키기 위해 구매하려 했던 작가 에스테이트가 내게 양보한 것이다.

브리짓 라일리 작품도 선보인 명원박물관 '비전의 예술가' 전시 사진. 문 사이로 보이는 게 브리짓 라일리 작품이다. 슬리퍼스써밋 제공

브리짓 라일리 작품도 선보인 명원박물관 '비전의 예술가' 전시 사진. 문 사이로 보이는 게 브리짓 라일리 작품이다. 슬리퍼스써밋 제공

작품과 늘 가까이하기에 작품 구매에 대한 문의를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개인적 사례를 말하게 된다. 피사로처럼 박물관에 소장된 작가라도 작품 가격이 극적으로 오르진 않는다는 사실도 보탠다. 투자 가치라면 현존 작가의 작품이 더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변수가 있다. 그래서 많은 조사 연구와 고민 끝에 추천한 작가가 브리짓 라일리였다. 1962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영국을 대표해 참여한 그는 여성작가 최초로 페인팅 상을 품에 안았다. 1960년대의 아이콘이자, 최근 70년 동안 작가 생활의 실험정신은 그를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한 국공립미술관 회고전은 가격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그는 벌써 5년 전에 스코틀랜드와 런던의 국립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졌다. 이는 자연스러운 작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2016년 크리스티 런던에서 'Diagonal Curve'는 430만 파운드에 팔렸고, 2022년 440만 파운드, 약 70억 원에 최고가가 경신됐다.

라일리는 자신의 유화작품이 개인이 수집하기에는 너무 고가라는 것을 알고 드로잉과 판화 작품이 '자신과 관객이 만나는 통로'라 말한다. 그렇게 라일리의 드로잉, 판화 작품들 12점은 작년 내가 큐레이팅한 국민대 명원박물관 개관전 '비전의 예술가'의 중심이 됐다. 93세인 그의 친필 작품이 앞으론 많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요인도 기획 및 추진에 한몫했다. 전시장은 한성판윤 한규설이 살던 고택과 신관 한옥이었다. 100년의 세월을 머금은 한옥이 자연을 모티브로 한 라일리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와 어울렸다. 세상의 모든 귀중한 예술은 공명한다는 말처럼 한옥과 라일리의 작품은 가장 동시대적 방식으로, 동서양의 미학적 조화를 이루듯 공명했다. 드로잉이 작가의 손길을 보여주듯, 컬렉션은 컬렉터의 예술 사랑을 통해 그 생명을 이어간다. 시대에 걸맞게 새로 호흡하며.

김승민 슬리퍼스 써밋 & 이스카이 아트 대표
대체텍스트
김승민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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