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전가, 포퓰리즘 막으려면 '자동안전장치'는 필수다

입력
2023.03.13 04:30
수정
2023.03.27 10:02
25면

편집자주

오래전부터 우리사회 최대 숙제였지만, 이해관계 집단의 대치와 일부의 기득권 유지 행태로 지연과 미봉을 반복했던 노동·연금·교육개혁. 지속가능한 대한민국과 미래세대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3대 개혁>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한다.

연금개혁 : <2> 먼저 움직인 유럽 주요 국가들

스웨덴은 1990년대말부터 연금개혁에 나서 주요 선진국 가운데 지속가능한 연금시스템을 구축한 대표적 나라로 꼽힌다. ⓒ게티이미지뱅크

스웨덴은 1990년대말부터 연금개혁에 나서 주요 선진국 가운데 지속가능한 연금시스템을 구축한 대표적 나라로 꼽힌다. ⓒ게티이미지뱅크


98년 스웨덴 이후, OECD국 70% 안정장치 도입
미적립부채 당해 연도 해결로 부실 우려 해결
유럽 주요국, 보험료 높아도 소득대체율은 비슷

오랜 기간 연금개혁이 답보 상태에 있다 보니, 개혁동력 확보 차원에서 외국의 연금개혁 사례가 자주 소개되고 있다. 총 9회에 걸쳐 게재되는 연금개혁 시리즈 2번째를 외국의 연금개혁 동향으로 설정한 배경이다.

연금개혁의 국제적인 추세는 공적연금의 통합운영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자동안정장치 도입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 연금 평가보고서(2022년)도 우리나라 모든 공적연금을 통합 운영하라고 권고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공적연금제도를 완전히 이원화시켜 운영하는 국가는 한국·독일·프랑스·벨기에 4개국에 불과해서다.

그래픽=강준구기자

그래픽=강준구기자

OECD 회원국 중에서 유럽 중심의 회원국들, 즉 EU 회원국들은 향후 연금개혁의 방향성을 결정할 중위연령과 인구구조 변화를 전망할 수 있는 출생률 측면에서, 우리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양호한 여건에 놓여 있다. 이들 국가의 중위연령은 2019년 43.7세에서 2070년 48.8세로 5.1년이 증가하는 반면, 우리는 2020년 43.7세에서 2070년에 62.2세로 18.5세나 증가할 전망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EU 회원국 대부분은 우리보다 훨씬 강력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의 연금 개혁을 이미 달성했다.

'세기의 개혁'으로 불릴 만큼 국가가 운영하는 연금제도의 작동원리를 바꾼 1998년 스웨덴 연금개혁, 즉 자동안정장치 도입은 서구 연금제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일본을 포함하여 OECD 회원국의 70%가 스웨덴식 자동안정장치 개념을 도입해서다. 자동안정장치란 연금 운영에서 정치적 판단을 배제하며, 재정적인 지속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자동으로 제도를 고치는 연금 운영방식이다. 주요 OECD 회원국들이 이러한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하였음에도 우리는 이들 국가의 과거, 즉 개혁 이전의 연금제도에 대한 환상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절반도 부담하지 않으면서 받는 연금액 수준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픽=강준구기자

그래픽=강준구기자

유럽 주요 국가들은 당해 연도 연금제도 운영 비용, 즉 제도 운영원가를 당해 연도에 해결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미래에 받을 연금액만큼의 보험료를 매년 미리 부담함으로써, 매 회계연도에 미적립 연금부채(Unfunded accrued liability)가 발생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미적립 연금부채는 이미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중에서 적립기금을 차감한 액수, 즉 연금지급에 부족한 액수를 의미한다.

최근 연금개혁 이후 유럽 국가들은 연금 보험료를 세금이 아닌 미래에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간주한다. 즉, 가입자들이 납부하는 보험료를 저축 개념으로 보고 있다(Armand Fouejieu, et al., Pension Reforms in Europe - How Far Have We Come and Gon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pp.23-24). 독일의 연금 포인트(point)식 제도개혁과 오스트리아의 2005년 개혁은 과거 연금제도에 비해 보험수리적인 성격, 즉 자기가 낸 것을 돌려받는다는 개념이 강하게 반영되어 운영되고 있다.

세대 간 부양이라는 철이 지난 공적연금 작동원리를 내세우면서, 출산율이 급락한 상황에서도 대책 없이 무조건 국가가 책임지라는 식인 우리의 연금 논의와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른 접근이다.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우리의 국민연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음에도 연금 지급률은 우리 국민연금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보다 인구구조가 훨씬 양호하고, 연금 보험료를 두 배 더 부담함에도 덴마크를 제외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보편적인 조세방식의 기초연금을 폐지했다. 보편적인 기초연금을 유지하는 덴마크도 노후소득보장에서 기업이 운영하는 퇴직연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세금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보편적인 기초연금 도입 주장의 현실성이 떨어짐을 보여주는 생생한 국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래픽=강준구기자

그래픽=강준구기자

핀란드는 1990년 초의 혹독한 경기 침체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운영하던 기초연금을 대폭 축소하고, 소득비례연금 위주로 노후소득보장제도를 개편했다. 대신 저소득층에게는 국가가 설정한 빈곤선(National minimum) 확보를 위해, 세금 조달의 보증연금(Guarantee pension)을 지급한다. 주택수당(Housing allowance)이라는 현물속성 급여를 추가해서 적정 노후소득을 보장한다.

약 24% 보험료를 부담하는 핀란드 소득비례연금은 선별적 지급의 기초연금을 포함할지라도 연금액이 많지 않다. 총 연금액 평균(2021년 말 기준)이 1,784유로(최근 환율 급등으로 인해 약 250만 원 수준으로 증가)이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동일하게 운영하는 핀란드는, 우리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퇴직수당(민간 퇴직금 대비 최대 39%)이 없는데도, 우리보다 훨씬 적은 공무원연금을 지급(우리 공무원연금의 연간 지급률은 2035년에나 1.7로 하락할 예정이지만, 현재 핀란드 공무원연금 연간 지급률은 1.5)하면서도 이미 공무원연금 보험료는 28%(한국은 18%)를 넘었다.

독일은 지난 50년 이상 우리보다 많게는 6배, 지금도 2배 이상 보험료(18.6%)를 더 부담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2030년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38%, 평균 연간급여승률은 0.82(한국 국민연금은 1.06 수준·숫자가 클수록 연금 지급액이 많아짐)로 전망된다. 이러한 전망은 '자동안정장치 작동을 수년 동안 정지하기로 한 2018년 독일 대연정 합의조건'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는 있으나, 재정 불안정으로 결국에는 자동안정장치를 재개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전망은 2022년 국제 세미나에서 독일 악셀 뵈르쉬 슈판 교수와 토론했던 내용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픽=강준구기자

그래픽=강준구기자

인구구조가 우리보다 양호하고, 우리 2배가 넘는 18.5%의 보험료를 부담하는 스웨덴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30%대 초반이다. 여타 연금을 합친 총소득대체율도 2050년 이후 40%를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연금 논의의 주요 쟁점인 실질 연금가입기간의 경우, 스웨덴은 2019년 41.3년을 달성했으며, 2060년 이후에도 40년 정도로 예상된다. 평균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이미 40년이 넘어가고, 우리보다 보험료를 2배 넘게 부담하는 데도 이 정도만 지급한다. 그러니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50년 뒤에도 국민연금 평균 가입기간을 27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에 70년을 누군가에게 부양받으면서 산다는 의미인 평균 가입기간 27년 가정이 진정 현실성이 있을 것인지 점검이 필요하다. 평균 가입기간이 짧아 실제 연금소득 대체율이 낮게 되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글 싣는 순서-연금개혁

<1> 왜 연금개혁인가? (윤석명)
<2> 연금개혁 국제동향 (윤석명)
<3> 노후소득보장의 적정성 (오건호)
<4> 다층적 노후소득체계 (양재진)
<5> 국민연금과 노후소득보장 (김태일)
<6> 세대형평·공적연금 지속성 (이창수)
<7> 국민연금기금 효율적 운용 (박영석)
<8> 3대 직역연금과 국민연금 (윤석명)
<9> 노동·교육개혁과의 연계 (이근면)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한국연금학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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