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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년 전 정조가 만든 시장… '상인 DJ' 입담에 사람들 몰려

입력
2023.03.13 09: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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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전통시장] <16>수원남문시장
정조가 내탕금으로 전국 상인 불러
팔달문시장 비롯해 9개 시장 형성
매장 1460개 달해… 마트 못지 않아
한복·먹거리 특화 하루 3만명 찾아
2017년부터 상인들이 방송 진행
시장 소식 전하고 화재예방 안내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경기 수원 팔달문 시장 입구. 수원시 제공

경기 수원 팔달문 시장 입구. 수원시 제공

경기 수원에는 '왕이 만든 시장'이 있다. 1796년 수원 화성을 축조한 조선시대 22대 왕 정조가 주변 경제를 살리고 자립기반을 키우기 위해 내탕금(임금의 개인자금) 6만 냥을 내놓고 상인들을 모았다. 대략적인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지금의 수십억 원에 해당하는 돈을 임금이 내놓고 조성한 곳이 바로 팔달구에 위치한 수원 남문시장이다.

정조는 전남 해남에서 무역업을 하던 윤선도 후손들을 수원으로 불러 국가가 관리하던 인삼과 갓 유통권을 넘겼다. 소문이 돌자 전국에서 이름 꽤나 날리던 상인들이 수원으로 모여들었다. 팔달문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2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수원을 넘어 경기도 최대 전통시장으로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9개 시장 하루 평균 고객만 3만 명

경기 수원시 남문시장 위치도. 그래픽= 김문중 기자

경기 수원시 남문시장 위치도. 그래픽= 김문중 기자

정조의 부름에 처음 상인들이 모여든 곳은 팔달문 앞이다. 지금도 먹거리와 점포 등을 파는 240개 점포가 모여 있는 팔달문시장은 남문시장의 중심 역할을 한다. 팔달문시장을 시작으로 지동·못골·미나리광·공구상가·로데오·시민상가·영동·패션1번가 등 조금씩 다른 성격의 시장들이 잇따라 개장하면서 남문시장은 9개의 시장을 거느린 대형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1,460여 개 매장에 종사자만 4,000여 명으로, 하루 평균 고객만 최대 3만 명에 이른다. 여느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남문시장 관계자는 "전통시장이지만 규모 면에선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절대 뒤지지 않는 다양성을 지닌 곳"이라고 말했다.

9개 시장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은 300개의 점포를 거느린 영동시장이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1월 등록된 영동시장은 한복과 양장, 포목, 커튼 등으로 특화돼 있다. 경기 남부권에서 한복을 맞추려면 영동시장을 들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상인들 뀌띔이다. 영동시장과 달리 160개 점포가 입점한 남문패션1번가시장은 젊은 층 감각에 맞는 보세의류 관련 상품으로 청년층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시민상가시장(60개 점포)은 경기도 백화점 1호(시민백화점)로 등록된 현대식 시장으로, 일반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의류 등을 취급해 단골 손님이 많다.

먹거리로 유명한 곳은 221개 점포가 있는 지동시장이다. 정육과 순대를 비롯해 다양한 품목들을 판매해 수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60개 점포가 있는 미나리광시장은 규모는 작지만 야채와 나물 등 신선 농산물이 가득하다.

지동시장 입구는 수원 화성을 본떠 만들어 눈길을 끌고 있다. 임명수 기자

지동시장 입구는 수원 화성을 본떠 만들어 눈길을 끌고 있다. 임명수 기자


9개 시장 상인들이 DJ로 활동

지난 8일 수원남문 방송을 앞두고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박노철(왼쪽)씨. 임명수 기자

지난 8일 수원남문 방송을 앞두고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박노철(왼쪽)씨. 임명수 기자

수원 남문시장 상인들은 자체 제작한 방송 프로그램으로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노력을 6년째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일 시장 내 수원남문방송국에서 만난 박노철(57)씨는 "9개 시장 상인과 고객을 9개 기차에 태워 떠나는 은하철도 999 디제이 철이와 함께 3월 9일 음악여행을 떠납니다”라며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박씨는 "시장 상인과 시장을 찾은 고객들이 보다 즐겁게 물건을 사고팔 수 있도록 방송하고 있다”며 “시장이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갖고 힘닿는 데까지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장 방송국은 2017년 7월 14일 개국했다. 2016년 정부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글로벌 명품시장’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방송국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고 진행했다. 남문패션1번가시장에서 점포를 운영 중인 '철이' 박씨를 비롯해, 각 시장 상인들이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한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선 DJ들이 9개 시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경조사부터 소소한 얘기를 상인들에게 듣고, 시장 발전 방향과 주요 공지사항을 전한다. 경기남부경찰청의 치안 활동과 경기소방재난본부의 화재 예방 활동도 안내한다.

DJ로 활동 중인 강희수씨는 "(우리 방송을) 한 번도 못 들어본 분은 있지만 한 번 들으신 분들은 방송을 안 하면 허전해한다”며 “상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고 했다. 69세 고령 DJ 한창석씨는 “상인들이 똘똘 뭉쳐 상권이 활성화되면 경제도 좋아지는 것 아니겠느냐”며 “다음달 20일 500회 특집을 하는데 많은 고객들이 시장을 찾아 방송도 듣고 물건도 많이 사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방송국에 모인 상인 DJ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임명수 기자

지난 8일 방송국에 모인 상인 DJ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임명수 기자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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