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해외 출장 보고서 한번 봅시다

의원님, 해외 출장 보고서 한번 봅시다

입력
2023.03.09 18:30
수정
2023.03.10 08:3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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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모습. '엔데믹' 상황과 맞물려 해외 여행객들이 늘고 있다. 전국 지자체, 지방의회의 해외 출장, 연수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자치단체장의 해외 출장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열흘 일정으로 유럽을 찾을 예정이고, 박형준 부산시장은 최근 남아공, 앙골라 등 아프리카를 다녀왔다. 9일엔 최민호 세종시장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스크 전면 해제 이야기가 나오는 ‘엔데믹’ 상황과 맞물리면서 광역 17곳, 기초 226곳 등 전국의 지자체장들이 달력에 출국 날짜를 체크해놓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다.

시민들의 삶이 팍팍한 때에 장시간 자리를 비우는 단체장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진 않다. 그러나 해외 도시와의 협력으로 지방정부의 경쟁력을 키우고 국익에 기여하는 목적에 충실한 출장이라면 문제없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해외 도시와 처음부터 힘을 합치기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단체장들의 해외 출장을 아니꼽게 볼 필요는 없다. 서로 얼굴을 보고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협력의 꽃도 피기 마련이다.

문제는 지방의회의 해외 출장이다. 주민 대표기관으로서 집행부 감시와 견제를 본업으로 하는 지방의회 특성상 지자체 수장의 해외 출장과 달리, 손에 잡히는 성과를 만들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최근 충북도의회의 한 상임위 해외 연수 과정에서 소속 의원 한 명이 기내에서 추태를 부린 의혹으로 논란이 일자 출발이 임박한 4개의 다른 상임위 해외 연수가 전면 취소된 게 이를 방증한다. 전국의 시선이 충북도의회에 쏠렸다 하더라도 의정활동에 필요한 당당한 출장이었다면 취소할 이유가 없었다. ‘예정대로 비행기를 타겠다’고 한 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 출장이 ‘가면 좋지만 안 가도 그만’인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외부의 따가운 시선에도 이런 외유성 출장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지방의회가 예산 배정의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의원들의 해외 연수 명목으로 거액의 예산이 책정돼 ‘어차피 써야 할 돈, 어떻게 해서든 나가보자’는 식으로 연수에 오르는 실정이다. 각국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해 지방의 글로벌 역량 강화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해외 출장이 이어져선 곤란하다.

정부도 이 문제를 알고 있는 듯하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각 지방의회에 공문을 보내 해외 연수 시 해외연수계획서를 작성한 뒤 심사위원회의 검증을 거치고 계획서와 사후 결과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다. 충북도의회를 비롯해 최근 해외로 연수를 떠난 지방의회의 홈페이지를 보면 이런 요건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인사들로 심사위가 꾸려진 정황이 짙은 데다 연수 보고서도 형식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부분상임위 차원에서 종합해서 보고서를 내는데, 분량도 얼마 되지 않고 의원 개인의 소감도 빠져있다. 동행한 관련 부서나 상임위 직원이 보고서를 대신 작성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누가 바로잡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무도 없다. 지방시대에서 지방의 권한과 자율성 확대를 주창한 정부가 ‘권고’ 이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방의회가 달라졌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줘야 한다. 개별 연수 보고서가 ‘외유’ 딱지를 떼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정민승 사회부 차장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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