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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화 같은 이야기

입력
2023.03.09 16:00
수정
2023.03.09 16:16
26면

해저 땅속 구멍 내 이산화탄소 주입
실현 가능성 확인 못하면 그림의 떡
화석연료 사용 면죄부 시도는 성급

편집자주

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지상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선박이나 배관으로 이송해 해저 땅속에 저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개념도. 글로벌 CCS 연구소 제공

지상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선박이나 배관으로 이송해 해저 땅속에 저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개념도. 글로벌 CCS 연구소 제공

먼바다 땅 밑에 깊이 2㎞나 되는 구멍을 내려고 했다. 세상 골칫덩이가 돼버린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영구히 묻기 위한 사전작업이다. 그런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장비를 싣고 바다 위에 떠 있을 플랫폼 만드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그러다 날이 추워졌다. 안전하게 플랫폼을 설치하고 구멍 뚫기(시추)를 시작하려면 바다가 잔잔해야 한다. 해상 기상 예측이 가능한 기간은 열흘 정도인데, 각종 장비를 준비하고 바지선을 동원해 시추 지점까지 플랫폼을 가져가는 데는 보름이 족히 걸린다. 겨울 바다 날씨를 종잡을 수 없어 일단 미뤘다.

우리 과학자들이 지난해 겪은 실제 상황이다. 해를 넘긴 시추를 이르면 다음 달 나가려는데,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막상 구멍을 뚫어보니 이산화탄소가 기대보다 많이 안 들어갈 것 같으면 어쩌나 싶어서다. 해저 퇴적층에 이산화탄소를 넣을 수 있는 공극이 많다는 곳을 시추 지점으로 잡긴 했지만, 저장 가능 용량을 앞서 물리탐사로 파악해 봤더니 이론적으로 예측한 것보다 작았다. 실제 파보면 더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 저장 공간이 넉넉하다 해도 실제 이산화탄소 주입까진 난관이 있다. 육지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모아 해상으로 가져가야 한다. 배에 싣고 가든 바다 밑에 관을 깔아 보내든 많은 비용이 든다. 이산화탄소가 기체라 한곳에 모으는 데도 돈과 에너지가 든다.

꾸역꾸역 이 난관을 넘어도 다른 문제가 기다린다.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넣는다 한들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옆으로 퍼지거나 밖으로 새거나 바닷물에 녹아들 수 있다. 그게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모른다. 이산화탄소를 욱여넣을 때 생긴 압력이 땅속에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혹여 근처에 몰랐던 단층이라도 있으면 지진 위험까지 더해진다. 걱정들을 떨쳐내려면 땅속과 바닷속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

이 어마어마한 아이디어가 바로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기술이다. 탄소중립에 필수라는데, 의문이 생긴다. 대체 국내에서 가능하긴 할까. 이미 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으니 터무니없진 않다. 하지만 먼저 시작한 나라 대부분은 시추해 놓은 유전이 있거나 국토가 넓다. 그런 나라에서조차 CCS를 “동화 같은 이야기” “그린 워싱”이라며 쏘아붙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동화 아닌 현실이라 해도 기후변화에 기여하는 정도는 제한적일 거란 전망도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최대 1,030만 톤, 2050년까지 6,0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국내외 땅속에 묻겠다는 계획이다. 이 숫자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과학자는 아직 많지 않다. “산업 분야에서 현 기술로 아무리 용을 써도 2050년까지 줄이지 못할 만큼의 이산화탄소를 다 CCS로 처분하겠다고 모아놓은 수치”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CCS가 실현되지 않을 때 그 이산화탄소는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우리 바다에서 정말 CCS가 가능한지 이른 시일 안에 판단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한시가 급한 기업들은 해외 땅속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다른 나라는 자기네 이산화탄소부터 묻으려 할 것이다.

기후 전문가라는 한 경제학자가 CCS 같은 과학기술로 “탄소를 대기 중에 퍼지지 않도록 통제하면 화석연료를 더 써도 된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호언장담했다.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기술을 탄소 배출 면죄부로 여기는 건 성급하다. 충분히 묻을 수 있는지, 정말 묻을 수 있긴 한지 면밀히 확인부터 할 일이다. CCS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를 대비하는 플랜B도 필요하다.

임소형 논설위원 겸 과학전문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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