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40%를 괴롭히는 일본인의 국민병

입력
2023.03.18 04:40
12면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인을 괴롭히는 꽃가루 알레르기는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땅에 일본 정부 주도로 심은 편백나무, 삼나무 때문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인을 괴롭히는 꽃가루 알레르기는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땅에 일본 정부 주도로 심은 편백나무, 삼나무 때문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봄과 함께 시작하는 꽃가루 알레르기

추위가 한풀 꺾이고 제법 봄기운이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봄이 성큼 다가오는 이 시기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한반도보다 겨울이 짧은 일본 열도에서는 2월 중순부터 날이 풀린다. 발맞춰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꽃가루에 반응하는 계절성 알레르기 환자가 급증한다. 한국에도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지만, 이 계절의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일명 ‘꽃가루증(花粉症)’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계절성 알레르기 때문에 고통받는 일본인이 무려 전체 인구의 40%라고 한다. 말 그대로 일본의 ‘국민병’이다.

일본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외출할 때에 마스크를 착용했는데, 이 역시 알레르기 환자가 많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꽃가루가 대량으로 날리는 계절이 되면 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항히스타민 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출근이나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중증인 사람도 많다. 외국인도 일본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 알레르기 물질이 몸속에 축적되어 없던 꽃가루 알레르기가 ‘발병’한다. 아니나 다를까 내게도 일본 생활 6년 차가 되던 봄에 반갑지 않은 증상이 찾아왔었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미열이 있는 듯 머릿속이 뿌옇고 눈이 간지러운가 싶더니 코가 막히고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예전부터 일본에 살면 언젠가는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올 것이 왔구나’라고 각오는 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나의 경우에는 몇 년 고생한 뒤 점차로 증세가 가벼워졌다. 하지만, 일본에서 꽃가루 알레르기가 생긴 뒤 고국으로 돌아가서도 비염을 달고 산다는 외국인 친구도 있다.

매년 꽃가루 시즌이 되면 일본기상협회는 지역별로 꽃가루 예보를 발표한다. 햇빛이 좋고 기온이 훌쩍 오르는 맑은 날에는 꽃잎이 열려서 더 많은 꽃가루를 뿜어낸다. 봄 나들이하기 좋은 날에는 어김없이 꽃가루 경보가 울린다. 또, 여름의 기온이 높을수록 이듬해 봄에 날리는 꽃가루가 늘어난다고도 한다. 급격한 기후 변화 속에서 일본 열도의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있다. 뜨거웠던 지난여름 덕분에 올해 꽃가루 비산량은 지난해의 12배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은 안 먹으면 그만이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성분은 멀리 하면 되지만, 공기 중에 보이지 않게 떠도는 꽃가루로부터 도망갈 방법은 없다. 참 잔인한 봄이다.

◇ 일본에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가 많은 속사정

일본에서는 왜 이렇게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가 많을까? 다양한 꽃가루가 계절성 알레르기를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일본에서는 그중에서도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특히 일본 열도에 촘촘하게 심어져 있는 삼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꽃가루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주요 알레르기원이다. 일본이 원산지인 삼나무는 성장이 빠르고 나무 줄기가 곧게 자라기 때문에 건축재로 가공하기가 수월할 뿐 아니라, 나무의 모양도 산사태와 바람을 막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제주도에 삼나무가 많은데, 1960년대에 과수원의 방풍수와 가로수의 용도로 수만 그루를 갖다 심었다고 한다.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 전역에 대규모로 존재하는 삼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도 일본 정부가 정책적으로 조성한 인공림이다.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은 폐허가 된 땅을 재건하고 경제를 일으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는데, 이때에 정부가 앞장서서 대규모로 일본 전역에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심었다. 한편으로는 전쟁으로 파괴되고 피폐해진 국토를 녹지화한다는 명분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택 건설 경기가 좋아지면서 건축용 목재에 대한 수요가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전쟁 직후에 치솟았던 주택 수요가 이후 둔화되고, 해외에서 목재를 값싸게 수입할 수 있는 길이 생기면서, 잔뜩 심어 놓은 나무를 정작 베어서 쓸 일이 없어진 것이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1950년대 이후 일본에서 조성된 인공림의 약 70%를 점하는 수종이다. 그 나무들이 쑥쑥 자라 다량의 꽃가루를 뿜어내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가 급증한 것으로 보고된다. 과거에 너무 많이 심고 방치한 나무 때문에 지금 수천만 명이 매년 큰 고통을 겪는 것이다.

알레르기원인 나무를 적극적으로 벌채해서 숲의 규모를 줄이는, 간단한 해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관련 의료, 제약, 서비스업 등이 이미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다. 예를 들어, 꽃가루 알레르기에 특화된 의료 서비스의 규모도 상당히 크다. 알레르기 증상 발현을 막는 항히스타민제만 해도 수십 종류에 달하는데, 매년 봄철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가려운 눈에 넣는 약,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 목을 보호하는 사탕, 알레르기용 가글액 등 너무 다양한 알레르기 의약품이 있어서 선택 장애가 올 지경이다. 꽃가루를 제거해 주는 공기청정기나 청소기, 꽃가루 차단용 마스크, 꽃가루 차단용 안경이나 고글, 꽃가루가 몸에 달라붙는 것을 막아준다는 스프레이, 꽃가루를 완벽하게 털어낼 수 있다는 브러시, 모자나 아우터, 영양제나 식품 등 꽃가루 알레르기와 관련한 마케팅으로 재미를 보는 상품이 꽤 많다. 만약 알레르기원을 박멸해서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가 사라진다면, 의료 서비스나 제약 회사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받지 않겠는가? 그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일본 정부도 매년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각해지는 것이 문제라고 걱정만 할 뿐, 구체적인 대책에는 소극적이다. ‘꽃가루 알레르기 박멸’을 선거 공약으로 내건 정치가도 있었지만 결국 공염불에 그쳤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관한 한 적어도 지금까지는, 개인이 알아서 자구책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각자도생의 해법밖에는 없어 보인다.

◇ 남의 일만 같지 않은 일본의 꽃가루 알레르기 문제

일본의 꽃가루 알레르기 문제가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공기 중에 떠도는 황사나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대기질 악화가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매일 꽃가루 비산량 예보를 보고 알레르기 약을 챙기는 것처럼, 한국인은 대기질을 체크하고 미세먼지 차단용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쩌다가 우리는 자연 환경과 이렇게 적대적인 관계가 된 것일까? 사실 지난 몇 년간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 ‘덕분에’ 비교적 양호한 대기질을 즐길 수 있었다. 요 며칠 사이에 미세먼지로 뿌옜던 하늘을 보고 있자니, 모든 산업 활동이 정상화된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기질이 새삼스레 걱정스러웠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대기질은 아무래도 중국 대륙에서 발생하는 황사와 스모그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초미세먼지도 만만치 않은 오염원이라고 들었다. 일본의 꽃가루 알레르기 문제나 동아시아 지역의 대기질 악화 문제나 결국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불행이자 인재(人災)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 가능한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