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 "'제3자'가 대신 갚기 어렵다"

입력
2023.03.08 12:00
수정
2023.07.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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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 '제3자 변제'의 법적 문제점 지적

우리나라 기업이 일본 기업 대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한다는 정부의 해법에 대한 불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제3자 변제’를 주장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제3자’에 해당하지 않을뿐더러 피해자가 배상금을 거부하면 ‘변제’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굴욕적인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성주 할머니. 뉴스1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굴욕적인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성주 할머니. 뉴스1


우리나라 기업 = 제3자?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의 근거는 민법(469조)이다. 그런데 민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채무자(일본 가해 기업)를 대신해 돈을 갚을 수 있는 ‘제3자’는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예컨대 돈을 갚지 않는 채무자 때문에 자신까지 법적인 문제가 생기는 경우다. 대법원은 채무자와 법적으로 관계가 없는 ‘사실상의 이해관계자’는 대신 변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8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장윤미 변호사는 “(정부 측 변호사의 논리는) 법정 채권(법으로 정해진 채권)이니 사실 ‘아무나 갚아도 된다’라는 취지”라며 “그런데 법정 채권을 제3자가 변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는 건 통용되는 법리가 아니고, 판례도 없다”고 말했다.

“더러운 돈 안 받아”... 변제 불가능

무엇보다, 제3자 변제에서 중요한 것은 돈을 받겠다는 당사자의 의사다. 장 변호사는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는 있지만, 전제가 붙는다”며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 때에는 그러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받는 그 사실 자체도 중요하지만 누구로부터 받느냐도 상당히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민법에) 이런 단서조항을 붙여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가 왜 그런 돈을 받아요. 더러운 돈은 안 받아요”라며 우리 기업이 낸 돈은 받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피해자들 대다수가 수령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개인정보 없으면 공탁도 못한다

정부는 피해자들이 배상금 수령을 거부할 경우 법원에 공탁(법원에 돈을 걸어두는 것)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역시 불가능해 보인다. 이날 같은 방송에 출연한 신인규 변호사는 “일단 변제자 요건에서 문제가 있고, 법원에서 공탁을 받아줄지도 의문”이라며 “공탁을 할 때 원고들(피해자들)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되는데 아무리 행정기관이라 하더라도 그걸 불법적으로 취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정부가 개인정보를) 기재해서 공탁을 하면 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문제도 같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 잘 아는 대통령이 왜?

이처럼 법적 근거가 희박한 해법을 내놓은 데 대해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진행자는 “대통령이 법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봐야 하는데 왜 그런 건지”라고 물었고, 신 변호사는 ‘편의적 법률 해석’을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정부조직 개편할 때도 대통령령에 의존해 인사정보관리단 만든다든지 경찰국 설치하고 이런 식으로 법을 우회하는 방법을 많이 썼고, 당무 개입 논란을 할 때도 그랬다”며 “이런 일련의 목적들이 무리하게 너무 정부 편의적으로 법률을 해석해서 국정운영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고 우리 헌법은 삼권분립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의 결정을 이런 식으로 피해 가는 방식을 취할 때는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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