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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존중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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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들에게 휠체어를 타게 하고 건물 접근성을 조사하게 하는 활동을 매년 하고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어? 바퀴 굴리니까 재밌는데?'라며 처음엔 즐거워한다. 1~2시간 정도 리서치를 하고 돌아온 후 소감을 들어 보면 정반대다. "걸을 땐 몰랐는데 길이 기울어져 있어요. 뒤에서 밀어줘도 중심을 잡느라 온몸이 쑤셔요"가 가장 일반적 반응이다. 이들 휠체어 경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낯선 경험'도 있다. "휠체어 눈높이가 낮잖아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위축돼요." 사람들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다.
실제로 물리적 높낮이는 계급 차이의 은유로 많이 활용된다. 고대 왕이나 지배자들이 높은 단상에 올라갔던 것도 '지배자/피지배자 멘털'이 작용한 결과다. 영화 '기생충'은 등장인물들의 사회계급을 극명한 높이 차로 표현한다. 극 중 높은 지대 부잣집에 사는 등장인물들은 비가 오면 '비의 낭만'을 즐기지만 여기서 일하는 주인공 가족의 반지하방 집은 침수된다.
휠체어 타는 딸이 밖에 나가면 가장 많이 겪으면서도 매번 익숙해지지 않는 경험이 길에서 처음 만난 어른이 대뜸 뜬금없이 반말로 질문을 하는 경험이란다. 분명히 자기 또래의 비장애인 청소년에겐 존댓말을 할 법한 사람인데도 자신에게만큼은 반말로 말 걸어올 가능성이 70%는 넘는단다. 반말은 '너와 나는 서로 다른 계급, 사회적 지위에 있다'는 걸 외부로 드러내는 코드다. 어린이에게 반말로 말을 거는 것과 비슷한 심리인 셈이다.
그럼 존댓말과 배려를 담뿍 담아 말의 온도를 높이면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런 단어 중 하나가 '장애우'다. 얼마 전 아는 강사분이 내게 이렇게 호소를 해왔다. "장애우라는 말을 한번 교육에서 썼다가 혼났어요. 그거 아니라고. 상대방이 허락도 안 했는데 일방적으로 친구라 부르는 거라고요."
장애우란 말은 1980년대 이전 장애인을 칭하던 단어인 장애자('놈 자(者)'를 넣은) 대신 '장애인을 배려하자'는 차원에서 '친구 우(友)'를 넣어 1980년대에 널리 쓰이게 된 단어다. 말의 온도를 확 높였는데 왜 이것도 싫다는 걸까?
사실 장애자와 장애우라는 두 단어는 말에 담긴 온도의 높낮이엔 차이가 있지만 실상 쌍둥이 표현이다. '장애자'란 단어에는 처음 보는 휠체어 탄 장애인을 내려다보며 반말로 말 거는, 즉 장애인이 계급적으로 낮다는 태도가 내포돼 있다. 장애우란 단어에는 장애인에게 의사표시를 묻지 않은 상태에서도 단순히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로 부를 수 있다는 일방적 태도가 묻어 있다. 장애인을 '장애우'로 배운 중장년세대 중 일부는 길에서 만난 장애인에게 묻지도 않고 휠체어를 일방적으로 밀어준 후 장애인이 당황해하면 "도와 주는데도 싫다고 하냐?"며 기분 나빠 하기도 한다. 한 인간으로 존중하기보다 부르는 사람 마음대로 정의하는 것이다. 실제로 장애우란 표현이 쓰이는 공간을 보면 주로 '내가 이만큼 배려해 줬지?'라며 소리치는 공간이다.
장애인식교육을 할 때 '장애인의 장애에 집중하는 대신 그를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자는 것은 무얼 뜻하는가'를 종종 청중에게 질문한다. 그 답변으로는 장애인뿐 아니라 '나와 다른 세계'에 속한 이들을 '그 자식들' 또는 '그 친구들'이라고 통칭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생각해 보자고 한다. 혹시 그들을 나의 우월감이나 측은지심을 투영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지 경계해야 한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중의 온도를 유지하는 건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존중의 온도가 말과 태도에 밸 수 있도록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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