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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 햇살, 포근한 노을... 시 같고 동화 같은 순천만 바깥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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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로 소문이 나면 없는 길도 만드는 세상인데, 정반대의 길을 택한 곳이 있다. 전남 순천문학관은 순천만습지 안에 위치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1㎞ 넘게 걸어야 한다. ‘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와 한국 성인 동화의 장르를 개척한 정채봉 작가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곳으로 초가 9동으로 구성된다. 제방을 따라가노라면 끈적끈적한 갯벌 사이로 물고랑이 형성돼 있다. 바다인지 강인지 모를 물길이다. 무성한 갈대숲 끄트머리로 희미하게 산 능선이 걸리고, 곧 북쪽으로 날아갈 흑두루미 무리가 이따금씩 낮게 상공을 선회한다. 책장을 펼치지 않아도 이미 문학적이다.
4월 개막하는 국제정원박람회 준비로 문학관을 포함한 일대는 현재 폐쇄된 상태다. 3월 순천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차를 몰아 습지 바깥 바다로 가 보길 권한다. 순천만 동편의 와온해변, 서편의 화포해변 풍광이 또한 시 같고 동화 같다.
화포해변은 별량면 학산리에 위치한다. 장산마을과 학산마을을 거쳐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면, 바다로 살짝 돌출된 곳에 우명마을과 화포마을이 있다. 장서마을에는 예전에 염전이 있었고, 학서마을은 뒷산이 학 모양이어서 그리 불린다고 한다. 우명마을은 ‘소 울음’ 우는 마을이다. 송아지에 해당하는 마을 서편 봉화산이 바다 건너 큰 소인 와온마을을 보고 우는 형국이라는 재미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화포마을은 앞 바닷가에 진달래가 만발해 그리 부른다는데, 아직은 확인하기 이르다.
화포항은 화포마을의 조그마한 포구다. 고운 모래사장은 없지만 정겨운 갯마을, 넓고 질펀한 바다,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 물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어선들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광을 빚는다. 해안도로에 덱 전망대가 한 곳 있는데, 두세 대 차를 댈 공간이 있다. 장산마을에서 화포마을까지 바다와 바짝 붙어 이어지는 ‘남도삼백리길’을 걸으면 좀 더 여유롭게 갯마을 풍광을 즐길 수 있다. 화포해변은 순천에서 소문난 해돋이마을이다. 일출 무렵이면 아침 햇살이 드넓은 순천만을 가득 채운다.
와온해변은 화포해변에서 바다 건너 해룡면 상내리에 위치한다. 직선거리 3㎞가량이다. 와온(臥溫)은 ‘누운데미’를 한자로 옮긴 말이라고 한다. ‘데미’는 ‘불에 데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풀이한다. 뒷산 봉우리가 소가 누운 형상이고 산 아래로 따뜻한 물이 흘러 그리 부른다고도 하는데, 한자어에 억지로 꿰어 맞춘 인상이 짙다.
와온 앞바다는 썰물 때면 갯벌이 넓게 드러나고, 가늘고 구불구불한 물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짱뚱어·숭어·꼬막·맛·낙지 등 수산물이 풍성한 차진 바다다. 소규모 갈대밭과 칠면초 군락까지 형성돼 있어 연안습지 특유의 풍광도 함께 볼 수 있다.
여행객에게는 무엇보다 낙조가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 바다 건너편 산자락으로 해가 떨어지면 마을 앞 솔섬과 주변 갯벌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다. 질펀한 갯벌에 펼쳐지는 노을은 따뜻하고 편안함 그 자체이다. 곽재구 시인은 ‘와온바다’에서 ‘해는 / 이곳에 와서 쉰다 / 전생과 후생 / 최초의 휴식이다’라고 했다. 인근 여수 궁항의 풍광을 노래한 시도 하필이면 ‘와온 가는 길’이다.
와온해변이 노을만 좋은 건 아니다. ‘와온’이라는 어감 자체에 이미 포근함과 안온함이 짙게 배어 있다. 포구에서 해안을 따라가는 산책로는 순천만습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용산전망대까지 연결된다. 마을 어귀에는 전망대 겸 소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바로 옆에 작은 매실농원이 있는데, 지난 3일 일부 가지는 이미 화사하게 만개해 있었다. 갯가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매화 향이 뒤엉킨 아득한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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