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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신 아들 사건 재판은 유사한 다른 사례보단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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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사태와 관련해 학교폭력 가해자인 그의 아들이 징계처분에 반발, 소송을 걸어 고의로 시간을 끌었다는 비판이 집중 제기되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학폭 가해 사실이 기재될 경우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한 송사를 벌여 피해자의 피해 구제를 늦췄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법원 소년부 재판을 직접 심리했거나 변호인으로 관여한 경험이 많은 법조인들은 정 변호사 아들 사건의 재판은 다른 사건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행돼 확정됐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학폭 가해자라도 재판받을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 제도보완의 초점은 피해자 보호 강화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인 오용규 변호사는 4일 "정 변호사의 아들 사건 관련 학교 측의 징계와 법원의 재판이 다른 사건에 비해 느리게 진행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피해신고가 처음 이뤄진 2018년 3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를 열어 전학 처분을 결정했으며, 1년여 뒤인 2019년 4월 대법원에서 취소 청구를 기각하는 선고가 확정됐다. 다른 학폭 사건에 비해 처리가 빨랐던 셈이다. 학폭 피해자를 법률대리하는 박상수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율)도 “제가 대리하는 사건 가운데 소송을 시작한 지 3년여 된 것도 있다”며 “학폭 사건 신고 이후 아무런 문제해결 없이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졸업까지 가게 되는 경우”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재판받을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고 법조인들은 말한다. 재판청구권은 헌법상 기본권이기 때문에 이를 제한하면 징계가 위법해지기 때문이다. 오용규 변호사는 “누구에게든 행정심판에 대한 법원의 구제절차를 불가능하게 하면 위헌”이라며 “재판 진행을 빨리 할 필요는 있지만 절차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할 도리는 없다”고 말했다. 가정법원 소년부 재판 경험이 풍부한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가해자 부모 입장에서는 장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과하지 않은 징계를 해달라는 재판을 청구할 권리는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 아들의 경우 '전학 조치가 잘못에 비해 과하고, 이 조치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는 주장을 법정에서 할 권리를 빼앗으면 징계 처분이 무효가 된다는 뜻이다.
학폭 사건 전문 변호사들의 견해도 같았다. 박상수 변호사는 “학폭 사건도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유죄추정’으로 가면 안 된다”라며 “가해자라도 재판받을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규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양나래 변호사(법무법인 라온)도 “재판받을 권리는 (학폭 사건의) 피해 학생을 위해서든 가해 학생을 위해서든 모두 인정돼야 한다”며 “어떤 사건은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이 너무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재판을 3심까지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 변호사 측이 재판을 대법원까지 끌고 간 것은 무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정법원 소년부 재판 경험이 많은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학폭 사건의 유형이 일진이 이진을 괴롭히는 식의 드라마처럼 분명한 경우는 많지 않은 반면, 가해자가 징계처분을 받을 경우 낙인효과는 분명해 소송으로 다투는 일이 많다”면서도 “정 변호사 사건의 경우에도 부모로서 자식을 믿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테고, 사건의 사실관계도 잘 몰랐을 테니 소송을 한 것으로 이해하지만 재판에서 제3자 진술 등으로 증거가 명확해졌는데도, 1심에서 불복한 데 이어 대법원까지 간 것은 부모로서 억울한 마음이라기보다는 (자녀 입시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본안 심리 없이 상고 기각) 처리했다. 사실심(1·2심)을 받은 이후 법률심에서까지 다툴 쟁점이 없는 사건으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현행 학폭 사건 처리 문제의 핵심은 가해자의 재판청구 자체가 아니라, 가·피해자 분리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이란 게 이들의 일치된 견해다. 학폭 가해자가 학폭위의 전학 조치에 불복해 소송을 벌이게 되는 경우 본안 사건을 본격 심리하기 전 집행정지 신청을 한다. 이때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 가·피해자 분리 등의 조치도 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법원이 전학 처분은 집행정지 하더라도, 가·피해자를 분리하는 임시조치는 별도로 내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용규 변호사는 “성·가정폭력 사건의 접근금지와 같은 '임시조치'가 학폭 사건 처분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당국도 학폭 사건 피해 신고가 접수되는 동시에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분리하는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각 학교에서는 교육부의 ‘2022년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 따라 학교장이 학폭위 개최 전이라도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즉시 분리할 수 있지만, 최대 기한이 3일뿐이다.
박상수 변호사는 “현행 3일 강제 분리는 실효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학폭 사건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조속한 분리를 원하는 경우 전국의 폐교와 임용 대기 교사 등을 활용해 피해자를 보호하면서도 학습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피해자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지원센터를 마련함으로써 학폭위 결정이 재판에서 확정되지 않아, 오히려 피해자가 전학하고 자퇴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학폭 사건은 학교와 교사가 즉각 개입해 피해자를 적극 보호하지 않으면 피해가 장기·고착화하기 쉽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피해자가 학교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가해가 지속되기 쉬운 여건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했는데도 소송을 이유로 가해자와 분리되지 않는다면, 피해자가 느낄 수 있는 공포와 좌절감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추가 피해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고경은 고려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창시절 경험을 통해 대학생이 인식한 학교폭력 극복방법과 시사점'(2016)에서 “학교 폭력이 심한 경우에는 학년이 바뀌어도 계속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결국 피해자는 전학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학교가 피해사실 숨기기에 급급하고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의 전학을 학교폭력의 대응책으로 삼고 전학을 방관하거나 유도하는 등 학생들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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