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그림 문화다. 인도와 유럽이 진언(주문)과 축원 즉 말의 문화라면, 동아시아는 언어를 넘어선 기호를 추구한다.
동아시아 부적의 시원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다. 중국 문명의 시원기인 B.C 2,800년쯤에 복희는 황하에서 용마를 보게 된다. 그런데 용마의 등에는 바둑 같은 흑백의 그림이 있었다. 이를 '용마하도(龍馬河圖)'라 한다.
또 B.C 2,100년 무렵, 하나라 우왕은 황하의 지류인 낙수에서 거북을 보게 된다. 그런데 거북이의 등에도 흑백의 그림이 있었으니, 이를 '신귀낙서(神龜洛書)'라 한다.
이 하도와 낙서를 줄인 말이 '도서(圖書)'다. 도서는 흔히 책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래서 책을 모아 놓은 곳을 도서관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는 사실 그림이었다는 말씀.
그림이 왜 책이라는 의미가 되었을까? 당나라 장언원의 '역대명화기'에는 '글씨와 그림은 같은 기원을 가진다'는 '서화동원(書畫同源)'이라는 구절이 있다. 한자가 그림에서 기원한 상형문자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해가 쉽다.
한자의 기원과 관련된 전설에는 창힐이 새의 발자국을 보고 한자를 창안했다고 한다. 갑골문 역시 거북의 배 껍질을 불에 달궈진 쇠꼬챙이로 지져 균열(龜裂)이 발생한 그림에서 시작된다. 균열의 한자에 '거북 균'자가 들어가는 것 역시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준다.
도서에는 책 말고 그림이라는 의미도 남아 있다. 흔히 낙관이라고 부르는 그림이나 글씨 옆에 찍는 도장의 다른 명칭이 도서이기 때문이다. 낙관에는 글씨뿐 아니라 그림도 들어간다. 즉 도서라는 명칭에는 그림의 의미도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하도낙서가 상징적인 변형을 거쳐 축약된 것이 우리의 태극기다. 또 하도낙서를 기원으로 중국 철학의 최고봉인 '주역'이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어떤 철학과 교수님은 '태극기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인 국기'라고 말씀하곤 하셨다.
하도낙서가 그림의 기원이라는 점에서 이는 부적과도 상통한다. 때문에 중국의 도사가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태극기와 유사한 태극패(팔괘경)가 부적의 성격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그림 문화는 한반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화엄종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나 유교의 최고 상징인 퇴계의 '성학십도'는 이런 그림 문화의 정수다. 또 이들 그림은 부적처럼 신비한 힘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부적은 신비한 힘을 가진 특수한 그림으로 호도되지만, 실상은 포스터처럼 상징을 온축한 경우가 많다. 즉 도로 표지판과 같은 그림의 강렬한 상징성이 부적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적은 터브나 신비의 대상으로 한정하는 것보다, 삶의 풍요를 위해 일상으로 환기하고 끌어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벅스 로고에 등장하는 세이렌은 희랍신화에서 선원을 유혹하는 인어(님프)다. 스타벅스는 '세이렌이 선원을 홀린 것처럼 모두가 커피를 마시게 하겠다'는 의미로 세이렌을 상징으로 사용했다. 주술과 상징이 결합된 현대판 부적에 다름 아니다. 세이렌에서 경보기 의미로서의 사이렌이 파생된다는 점에서, 스타벅스는 우리에게 각성의 경보도 주는 것은 아닐는지?
나이키의 로고 역시 마찬가지다. 희랍신화 속 승리의 여신 니케, 그중에서도 루브르박물관의 '여인 3대장' 중 하나인 사모트라케섬 출토 니케상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 바로 나이키 로고다. 참고로 니케의 영어식 발음이 나이키다. 즉 나이키는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처럼, 니케 여신의 승리 기원과 함께 날개 달린 빠른 움직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부적이란 멀리 있는 신기루가 아닌 우리 눈앞의 매력적인 마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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