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외면한 채 양쪽으로 나뉘어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구체적 사례로 분석하고 해결책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여당 전당대회에 바람 일으킨 30대 정치인
희망 컸지만, 디테일 없는 구태의연에 실망
젊은 정치인의 시대 꿰뚫어 보는 분발 기대
국민의힘 당대표에 출마한 천하람 후보가 주목받고 있다. 젊은 리더의 등장은 '고인물' 정치권에 신선한 긴장감을 준다. 36세라는 나이, 대구 출신이면서 연고도 없는 전라남도 순천에 보수 정당 후보로 나섰던 뚝심, '윤심'을 놓고 치졸한 다툼이 벌어지는 전당대회 분위기에 대놓고 반기를 드는 기개는 언론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역시 30대에 대표가 된 이준석에 이어 또다시 젊고 참신한 정치인이 자리를 잡는다면 국민의힘은 물론 정치권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줄 것이 틀림없다.
정부와 여당은 제1야당 대표인 이재명 의원이 사퇴해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실 진짜 민주당이 달라지게 하려면 천하람과 같은 신인을 당의 간판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현재의 판세를 뒤엎고 천 후보가 당선된다고 가정해보자. 이재명 대표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까? 수많은 의혹과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가 버틸 수 있는 것은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냉소 덕이 크다. 한쪽에서는 '짤짤이'를, 한쪽에서는 '날리면'을 들고 나와서 국민들의 청각과 참을성을 시험하려고 했던 모습은 우리 정치권을 구성하는 두 개의 천박한 평행우주를 거울처럼 보여준다. 여기서 한쪽이 확 바뀌면 다른 한쪽도 바뀌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정치의 논리다.
물론 젊음과 참신함이 변화의 충분조건인 것은 아니다. 천 후보가 어떤 주장과 구호를 들고 나올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지난달 열린 국민의힘 비전발표회가 첫 무대였다. 결과는? 희망도 엿보였지만 실망도 그만큼 컸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 천하람은 두 개의 족자를 가지고 나왔다. '국민의힘 개혁과 총선 승리를 위한 비책'이라면서 펼친 족자 하나에는 '대통령 공천 불개입'이, 다른 하나에는 '공천 자격고사 의무화'가 적혀 있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평까지 듣는 한국적 풍토에서 여당 대표 후보가 대통령의 공천 개입을 막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것은 평가할 만하다. 대통령실이 뻔뻔스러울 정도로 전당대회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공천 자격고사 의무화'다. 이것이 과연 앞에 나서려는 청년 정치인이 던질 수 있는, 그리고 던져야만 하는 화두일까.
외양부터 퇴행적이다. 고색창연한 족자에 붓글씨로 써 내려간 한자, 요즘은 잘 쓰지도 않는 '고사'라는 단어의 선택까지 미래지향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치 '예전에는 모든 것이 좋았고 그때로 돌아가면 된다'고 부르짖는 것 같았다. 천 후보가 '資格(자격)'이라는 한자를 '自格'으로 잘못 쓴 것은 정말 징후적이다. 자격고사가 있던 시절에 그렇게 쉬운 한자를 틀리면 그대로 불합격이 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이 능력주의를 제대로 한번 해보는 것일까? 시험을 봐서 성적순으로 결정하면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이 해결될까? 물론 조국 사태를 거치며 무너진 공정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극심해지는 양극화와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출생률이 상징하는 젊은 세대의 불안 앞에 자격고사를 해답으로 내놓는 것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전당대회까지는 며칠이 더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단순히 여당의 지도부를 뽑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리더들의 등장은 우리 정치판 전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읽어내는 통찰, 힘든 사람들과 함께 가려는 마음, 진짜 중요한 문제들을 얘기해 보려는 용기를 보고 싶다. 천 후보를 비롯한 젊은 정치인들의 분발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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