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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로운 세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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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을 하러 나갔다가 재활용 쓰레기를 가득 안고 나오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지 도중에 쓰레기 절반을 내려놓고 나머지 절반만을 들고 흘끔흘끔 뒤에 남은 쓰레기를 곁눈질하며 쓰레기장으로 향하시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고민의 이유는 '잰걸음'이었다. 그러니까 그 쓰레기들이 안고 가기 어려울 만큼 부피는 컸지만 종이, 스티로폼 같은 가벼운 물건들이었다는 것.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빠르게 돌아간 생각은 내가 그 가벼운 짐을,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들어다 드리면 아주머니는 우선은 이 낯선 남자는 누군가 싶어 일순 당황하실 것이고, 다음 순간엔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의 부담감을 느끼시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굳이 번거롭게 감사를 해야 할 만큼 그분에게 필요한 도움일까?
세상 쓸데없는 걱정이다 싶지만 내가 일상에서 종종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느 건물의 여닫이문을 밀고 들어갈 일이 있을 경우 내가 열 걸음쯤은 뒤에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먼저 가던 분이 굳이 문을 붙잡고 나를 기다려주고 있으면 나는 느긋이 걸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뛰어들어가야 하고, 그런 수고(?)를 끼친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까지 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그냥 문앞에 가까이 선 순서대로 타고 내리면 될 것 같은데 나를 배려해준다고 굳이 먼저 타라고 손짓을 하거나 등뒤로 손을 올려서 밀어넣는 자세를 취하는 분들이 있다. 덕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순간 한두 박자의 머뭇거림이 발생하게 되고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들릴락 말락 인사를 하는 고도의 테크닉도 동원된다.
하긴 이렇게 '불편을 도운 것에 사례를 하기 위해 겪을 불편이, 주는 도움에 비해 큰지 작은지를 따지는 것'부터가 쓸데없이 번거로운 세심함일 수도 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번쩍 들어다가 주고 갔으면 그만일 일인데 말이다. 이렇게 혼자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몇 초 사이 아주머니는 다시 돌아와 쓰레기를 가져가 버리셨다.
이 얘기를 주변 분들에게 했더니 그래그래 맞장구를 치면서 길에서 우당탕 넘어졌을 때 다가와서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 때문에 더 민망했었다는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역시 타인의 문제는 적당히 모른 척해주는 게 좋은 일일까? 그런데 어떤 분이 '진짜 크게 다쳐서 도움이 필요한데 다들 외면하면 그게 더 문제 아냐?'라고 말씀하셔서 듣고 보니 또 그건 그렇네 싶다. 대화를 듣던 다른 분이 민망해할까봐 못본 척 지나가주셔도 좋고, 도움이 필요할까 싶어 '괜찮냐?'고 물어주시면 또 그 마음이 좋으니 다 좋은 거 아니냐고 말씀하셔서 무릎을 탁, 쳤다. 진짜 문제는 '번거로운 세심함'이 아니고 그 세심함이 상대방에게 번거로울지 아닐지 한 번 더 고민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충분하지 못한 세심함'이로구나.
문을 열고 기다리기에 앞서 뒷사람이 몇 걸음이나 떨어져있는지, 엘리베이터에 어떤 순서로 타는 게 자연스러운지, 넘어진 사람에게 '괜찮냐?'고 확인하는 게 필요할 만큼 위급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한번 더 살피는 세심함 그리고 많든 적든 그 세심함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마음. 사회적 예절이라는 것은 원래 번거롭고 귀찮은 것이지만 오히려 덕분에 사람의 관계는 훨씬 매끄럽고 풍성하게 맺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작은 번거로움에 크게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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