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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 판정하는 탄소동위원소…아카시아꿀 집중 수거한 이유 있었다

입력
2023.03.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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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위원소비율 -22.5‰ 이하여야 천연벌꿀
사양벌꿀은 설탕물로 겨울 버틴 꿀벌이 만들어
천연벌꿀 가격이 세 배 비싸

편집자주

즐겁게 먹고 건강한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그만큼 음식과 약품은 삶과 뗄 수 없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소소하지만 알아야 할 식약 정보, 여기서 확인하세요.

꿀벌은 식물의 수정을 돕고 꿀을 만드는 고마운 곤충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꿀벌은 식물의 수정을 돕고 꿀을 만드는 고마운 곤충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각종 미네랄과 아미노산, 효소, 비타민이 풍부한 벌꿀은 꿀벌이 준 선물이지만 진짜를 판별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꿀벌이 꽃이나 수액이 아닌 설탕물을 먹고 만든 사양(飼養)벌꿀은 더욱 그렇죠. 색이나 점성, 맛으로는 구별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사양벌꿀을 가려내는 단 한 가지 정확한 방법이 있습니다. 탄소동위원소비율입니다. 지난해 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시중에서 천연벌꿀로 표시된 20개 제품을 수거해 탄소동위원소비율을 측정했는데, 5개 제품은 사양벌꿀로 판명됐습니다.

벌꿀은 꽃이 피는 계절에 따라 유채꿀, 잡화꿀, 아카시아꿀, 밤꿀 등의 순서로 생산됩니다. 이 중 식약처 검사에서 적발된 것은 주로 먼저 나오는 천연벌꿀들로 위장한 사양벌꿀이었습니다. 밤꿀을 표방한 것은 하나도 걸리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탄소동위원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경인청의 탄소동위원소 질량분석기(왼쪽)와 자동으로 시료를 주입하는 오토샘플러. 식약처 제공

식품의약품안전처 경인청의 탄소동위원소 질량분석기(왼쪽)와 자동으로 시료를 주입하는 오토샘플러. 식약처 제공

4일 식약처에 따르면 천분율로 표시하는 탄소동위원소비율을 따져 사양벌꿀을 판정하는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가짜 벌꿀 문제가 생기자 정부와 양봉농가, 한국양봉협회가 탄소동위원소비율(‰·퍼밀) 기준을 정했습니다.

-22.5‰ 이하는 천연벌꿀, -22.5‰ 초과는 사양벌꿀로 판정하기로 합의했고 이를 반영한 '식품공전'이 2017년 6월 고시됐습니다. 6개월간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은 2018년 1월부터였고요.

동위원소는 원자의 양성자 수가 같지만 중성자 수에 차이가 있어 질량이 다른 원소인데, 탄소의 경우 15개 정도의 동위원소가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가운데 방사성을 띠지 않는 '안정동위원소'는 2개입니다. 방사성 붕괴가 일어나지 않아 고유의 비율이 유지되는 겁니다.

아카시아꽃, 유채꽃, 밤꽃, 야생화 등에서 채밀된 천연벌꿀과 사탕수수가 주원료인 설탕으로 만들어진 사양벌꿀을 탄소동위원소 질량분석기로 분석하면 경곗값이 바로 -22.5‰입니다. -22.5‰까지는 천연벌꿀이지만 기준을 초과해 -12‰까지인 것은 사양벌꿀이고, 그 이상은 그냥 설탕입니다.

사양벌꿀을 천연벌꿀로 속인 게 문제

벌꿀 종류별 정의와 탄소동위원소비율. 식품공전

벌꿀 종류별 정의와 탄소동위원소비율. 식품공전

식품공전에 탄소동위원소비율이 명시된 이후 간헐적으로 검사가 이뤄지긴 했지만 제품을 대량 수거해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은 지난해가 사실상 처음이었습니다. 그간 꿀벌 집단 실종 등으로 가중된 양봉농가들의 어려움이 고려됐기 때문입니다.

현 규정상 벌꿀 영업자는 탄소동위원소비율을 측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식품유형을 벌꿀(아카시아꿀, 밤꿀, 잡화꿀 등)이나 사양벌꿀 등으로 구분해 표시해야 합니다. 특히 사양벌꿀은 12포인트 이상 크기로 '이 제품은 꿀벌을 기르는 과정에서 꿀벌이 설탕을 먹고 저장해 생산한 사양벌꿀입니다'라고 알려야 합니다.

한데 식약처가 적발한 5개 업체들은 제품에 '야생화 벌꿀 100%' '아카시아꿀' 등을 표시했을 뿐 사양벌꿀 안내 문구가 없었습니다. 2개 업체는 천연벌꿀인 양 탄소동위원소비율을 '–22.5‰ 이하'로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천연벌꿀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지 사양벌꿀도 엄연히 식품입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시중에서 천연벌꿀은 1㎏당 4만~6만 원, 사양벌꿀은 1만5,000~2만 원으로 가격 차이가 세 배 정도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세 배나 더 주고 사양벌꿀을 사 먹는다면 분통이 터질 일이죠. 이 때문에 식약처는 해당 업체들을 관할 경찰서에 '식품위생법'과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직접 고발했습니다.

천연벌꿀 잘 고르려면 채밀 시기 봐야

식품공전의 분류상 벌집 고유의 형태가 유지된 벌집꿀. 게티이미지뱅크

식품공전의 분류상 벌집 고유의 형태가 유지된 벌집꿀. 게티이미지뱅크

이번에 적발된 사양벌꿀들이 거의 아카시아꿀, 잡화꿀을 표방한 것은 식약처가 처음부터 이런 꿀들이 위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집중적으로 분석했기 때문입니다. 강용모 식약처 식품안전현장조사TF 기술서기관은 "봄에 가장 먼저 채취하는 벌꿀에 사양벌꿀이 혼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계절별 벌꿀 생산 사이클을 따져 봤다는 얘기입니다. 꿀벌이 가을에 벌통을 꽉 채우는 것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인데, 이 벌꿀을 빼내면 꿀벌에게 설탕물이라도 먹여야 합니다. 설탕물이 꿀벌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양식입니다. 꽃이 피는 계절에는 굳이 설탕물을 먹일 필요가 없는 거죠. 요새 설탕값도 엄청 올랐으니까요.

겨울을 나고 봄이 시작되면 벌통에 찬 사양벌꿀을 빼내고 다시 천연벌꿀을 담으면 되는데, 먼저 피는 꽃이 유채, 야생화, 아카시아 등입니다. 유채꿀은 5월 초, 아카시아꿀은 5월 중순부터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만약 사양벌꿀이 완전히 비워지지 않은 상태라면 이런 꽃들에서 나온 벌꿀과 섞일 가능성이 생깁니다. 반면 밤꿀은 6월 중순부터 나오기 시작하고 양도 많아 이 같은 걱정이 확 줄어들게 되죠.

벌꿀 혼입이 의도적인게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서식품 같은 대기업들은 벌꿀이 입고될 때마다 자체적으로 탄소동위원소비율을 분석해 엄격히 관리하지만 영세한 양봉농가나 유통업체들이 그처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봄에 최초 채밀하는 것보다 채밀 시기가 늦으면 천연벌꿀을 제대로 고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거겠죠.

김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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