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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다시 오면... 학교는 가장 늦게 닫고, 맨 먼저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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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모두 자란다. 한 사람만 빼고.” 소설 ‘피터팬’ 첫 문장입니다. 어쩌면 한국엔 여느 세대처럼 제때 자라지 못한 ‘피터팬 세대’ 가 나올 지 모릅니다. 긴 거리두기, 비대면수업 탓에 정서·사회 발달이 더뎌진 ‘코로나 키즈’ 말입니다. 마스크와 스마트폰에 갇혀, 아이들은 ‘제대로 클 기회’를 놓쳤습니다. 방치하면 소중한 미래를 영원히 잃게 됩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그 회복에 필요한 어른들의 노력을 함께 짚어 봅니다.
모든 아동은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부모와 사회, 국가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아동의 권리를 확인하고 실현할 책임이 있다.
(정부가 2016년 선포한 아동권리 헌장)
과연 대한민국은 아이들을 존중하며 아동의 권리를 챙겨주는 나라일까. 7년 전 어린이날 했던 다짐은, 그 후에도 끊이지 않았던 아동학대 사건을 생각하면 면구스러운 공염불이다.
코로나를 거치며 아이들은 더 소외됐고, 힘들어졌다. 코로나가 아이들 마음에 남긴 상처는 회복되지 못했고, 코로나 키즈는 마스크에 갇혀 제대로 클 기회를 잃었다. 이 아이들을 '잃어버린 세대'로 방치하지 않으려면, 어른들이 지금부터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한국일보 기획 '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에 큰 도움을 주었던 아동 복지·심리·인권 관련 전문가 10명의 의견을 토대로 5가지 제언을 추려봤다.
이 기사는 코로나를 계기로 다시 써 내려간 일종의 '재난 아동 권리 헌장'이다.
코로나 겪은 아이들의 건강, 교육, 삶의 질 등을 체크해 둬야, 또 다른 전염병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대안도 만들어 놓지 않겠어요?
(신의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재난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약자인 아동은 언제나 대재난의 최대 피해자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그랬다. 필수 발달 시기에 받은 정서·발달상 충격은 어른이 될 때까지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방수영 노원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팬데믹 이후 코로나 키즈의 성장 발달 상황을 체크하고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대상군을 식별하며 △정책 개발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추적관찰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 권리를 일찍부터 보장한 선진국에서 아이들 발달, 특히 정신 건강에 관한 추적관찰은 이미 '상식'이다. 미국은 국립보건원(NIH) 차원에서 실시해 온 '청소년 뇌 인지발달 연구(The Adolescent Brain Cognitive Development Study)'에 코로나 사태 변인을 발 빠르게 추가했다. 호주 역시 아동의 성장을 장기 연구하는 기존 프로젝트에 코로나 상황을 반영해 지속하고 있다. 기존 추적관찰 자료가 있다 보니, 코로나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더 면밀히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도 3년마다 실시하는 학생정서 행동특성검사가 있지만 "개인정보를 이유로 자료를 파기하다 보니, 아이들 마음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정책적 개입도 이뤄질 수 없는 상황"(방수영 교수)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우리도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국 단위 대규모 실태조사와 함께 △특정 그룹을 표본 삼아 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코호트 조사도 병행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코로나 시기 태어난 아기들, 신입생이었거나, 입시를 겪은 아이들을 뽑아내는 것"(김현수 일산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고려해 볼 만하다.
신의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국무총리실이 컨트롤타워로 나서 민관 합동의 역학조사팀을 꾸릴 것을 제안했다. 신 교수는 추적관찰이야말로 재난 후속 대책은 물론 예방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는 교육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복지·보호가 교차하는 거점 기관이에요. 등교 제한 때문에 아이들의 발달·보호·복지가 중단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김미숙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
코로나 기간 한국의 교문은 오래 닫혀 있었다.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유난히도 길었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일단 교문부터 걸어 잠갔고, 아이들의 정서·학업 공백보다는 '확진자 수'에 집착해 원격수업을 상당히 오래 가져갔다. 그 사이 아이들은 때맞춰 제대로 성장할 기회를 잃었고, 상실의 대가는 갈수록 커졌다.
전문가들은 "학교 문을 쉽게 닫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등교 제한에 따른 실익을 계산하고 결정하자는 게 대전제다. 등교 제한이 아동의 생존권 보호 및 감염 확산 방지에 얼마나 기여했는지(효과)와 학교 문이 오래 닫힘으로써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것(피해)의 무게를 따져보자는 거다.
학교 문이 닫히더라도, "아동의 권리와 발달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는 사회적 교육 및 돌봄 환경을 갖추는 준비에 방점을 찍자"(김항심 한국아동인권센터장)는 의견도 있다. "학교 문을 닫았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고려하는 게 관건"(전종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란 지적이다.
고민의 방향은 갈렸으나, '최소한의 원칙'은 모아졌다. 학교 문을 닫기 전에 피해를 따져보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준비를 하자는 것. 결국 "학교는 가장 늦게 닫고, 가장 먼저 열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목소리다.
성인 정신건강 문제의 절반은 14세 이전부터 나타나죠. 그런데 정작 아이들은 전문적인 정서 지원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방수영 노원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재난은 역시나 평등하지 않았다. 팬데믹 기간 비대면 수업 탓에 아이들은 '보편 시설'인 학교를 이용하지 못하게 됐고, 가정의 학습 환경 격차가 아이들의 학력 편차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정서적 측면에서도 부모의 관심 속에 큰 아이와, 돌봐줄 어른 없이 홀로 버텨야 했던 아이들 간의 격차는 더 커졌다. 전문가들은 재난 시기 국가의 돌봄 책임을 특히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우선 피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공적 돌봄 체계를 사전에 탄탄히 구축해 놓으라는 조언이다. "고소득층은 학교가 문 닫으면 학원 다니면 그만이지만, 대체재가 없는 취약계층은 온몸으로 팬데믹을 맞을 수밖에 없는 현실"(정익중 교수)이기에 "돌봄교실, 지역아동센터 등 돌봄 거점 공간의 내실화, 안정화"(김항심 센터장)를 미리 다져 놓아야 한다.
"대규모 아동 수당 증액"(김현수 교수)을 요구하는 의견도 나왔다. 만 8세까지 10만 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 대상을 고등학생까지 늘려 아이들의 생활, 문화 격차를 줄이는 데 쓰자는 거다. 김 교수는 "미국에선 코로나 시기 같은 빈곤층 아이라 하더라도 어떤 아이는 성적이 유지됐고, 어떤 아이는 떨어졌는데 아동수당의 차이로 보는 분석이 있었다"며 "복지수준이 높으면 학력 격차도 줄여 나갈 수 있다"고 짚었다.
격차 극복과 관련해선 "학습 격차에 비해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정서 및 사회적 관계 격차를 해소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유조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당부가 많았다. 방수영 교수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10월 세계 최초로 어린이 정신건강 통합 정책을 발표한 호주 정부를 모범 사례로 들었다. 아동의 마음 상태를 돌보기 위해, 학교를 넘어 가족, 지역사회까지 범위를 넓혀 포괄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속적인 정책 개발에 나서는 장기적인 국가 건강 프로젝트다.
방 교수는 "아이들이 전문적인 정서 지원을 못 받는다는 걸 호주 정부가 인정하고 반성하는 차원에서 나온 정책이라 더 의미가 깊다"며 "적절한 시점의 정서 심리 지원을 통해 아이들 인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아이는 부모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같이 키우는 거죠. 그렇다면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 국가가 돕고 확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부모교육은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주문한 아동 복지 대책 중 하나였다. 코로나 시기 돌봄 부담 증가에 따른 양육 스트레스가 아동학대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부모교육은 학계의 더 큰 화두가 됐다.
배화옥 경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교육엔 아동의 안전과 안정을 해치는 학대, 안전사고, 학교 폭력 등의 내용을 반드시 담아야 한다"며 "현재 학부모뿐 아니라 앞으로 부모가 될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어디까지 강제할 것이냐다. 모든 부모를 대상으로 의무화하는 건 "인프라, 실효성 차원에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문제"(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있다. 대안은 여러 가지다. "출생신고부터, 어린이집 유치원 입학 시기, 아동수당 처음 받을 때, 초등학교 입학 시기 등 생애주기별로 공권력과 접촉하는 시점에 부모교육을 받게"(정익중 교수)하거나,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부모교육을 늘리는 것"(이봉주 교수)도 방법이다.
코로나 때 '어린애들이 뭘 알겠어'라고 무시했던 건 아닌지, 아동을 배제하고 내려진 많은 의사결정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종합적으로 돌아봐야 합니다.
(유조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 시기 학교 문을 닫을 때도, 비대면 온라인 수업을 이어갈 때도, 어른들은 정책의 당사자인 아이들의 의견은 묻지도 듣지도 않았다. "아동과 청소년을 재난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보지 않고) 대상화해서 코로나를 겪게 했다"(김현수 교수)는 것이다.
먼저 재난 상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방수영 교수는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사실을 숨긴다면 더 큰 불안을 초래한다"며 재난 시기 아이들의 알 권리를 강조했다. 자율성도 중요하다. 재난 상황에서 자신이 해결책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는 것은 회복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유조안 교수는 "아동을 이해관계자의 일원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를 할 수 있는 인식과 풍토, 구조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난 시기에도 우리는 잘 자라고 싶어요. 감염병으로부터의 보호도 중요하지만, 감염병에도 불구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마련해 주세요. 안정적인 돌봄을 받게 해주세요. (중략) 학교나 가정, 그 외의 돌봄 공간에서 우리를 권리의 주체로 존중해 주세요."
김항심 센터장이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해 만들어 본 재난 아동 권리헌장의 내용이다.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아이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동등하게 참여시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도 존중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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