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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외국인… 법원은 추방 대신 가정 지키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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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결혼한 나이지리아 남성 A씨와 한국인 여성 B씨의 신혼생활은 힘겨웠다. 부부는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방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A씨는 일용직 노동으로 생활비를 벌었고, B씨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어지는 주거급여 등을 받아 힘겹게 생계를 꾸려 나갔다. 2018년 1월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계는 더욱 곤궁해졌다.
집안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A씨는 2019년 8월 경찰관을 밀어 넘어뜨린 혐의(공무집행방해)로 벌금 300만 원을 확정받았고, 2020년 2월 부부싸움 도중 아내와 아이를 폭행해 서울가정법원에서 6개월 보호관찰처분을 받았다. A씨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6차례나 형사사건에 연루됐고, 난민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법무부 산하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은 2020년 8월 A씨에게 강제퇴거(추방)를 명령했다. A씨가 출입국관리법상 '사회질서 또는 공공의 안전 등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A씨는 이에 "강제추방은 안 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①벌금형 1회 말고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②가정폭력 사건은 부부싸움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추방 대상이 아니란 취지였다. A씨 측은 "아내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추방을 당하면 5년간 입국이 금지돼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법무부 측은 그러나 "위법을 일삼는 외국인에게 가족과 생활기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체류를 허용하면 법질서를 경시하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크다"고 맞섰다.
1심 재판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월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경찰관 폭행은 경미한 범죄로 볼 수 없다"며 "부부싸움 도중 아내의 뺨을 때리고, 자녀 눈 주변의 실핏줄까지 터뜨리는 등 폭행 정도도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무부 재량권 남용' 주장에 대해서도 "추방을 통해 달성하는 공익에 비해 사익의 침해가 지나치게 크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고법 행정10부(부장 성수제)는 올해 1월 "법무부의 추방 명령은 위법하다"며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사법당국이 A씨의 재발 방지 다짐과 아내의 용서를 참작해 가정폭력 사건을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관찰로 끝낸 점을 고려해야 하고, 경찰관 폭행은 A씨가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한 탓에 발생한 우발적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가정 붕괴로 인한 사익 침해가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생계유지 및 양육과 관련해 가장의 역할과 책임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생계를 책임지던 A씨가 쫓겨나면 남은 가족이 생존을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법무부는 "추방 이후 체류자격을 취득해 재입국할 기회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가정이 파탄될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선 이례적 판결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제 인권 전문가인 최초록 변호사는 "법원이 그동안 법무부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해 왔기 때문에 추방 명령을 받은 외국인의 경우 승소 자체가 어렵다"며 "법원이 국내 체류 필요성을 면밀하게 검토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반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란 의견도 있었다. 양육 책임이 중요하더라도 가정폭력과 경찰관 폭행에 대해선 좀 더 엄격한 잣대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항소심 결과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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